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동선 Jul 30. 2021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쉰다

7~80년대에 한국에서 자란 많은 사람들 귀에 못이 박혔을 문장이다.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쉰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이 말을 처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학창 시절에 교사들이 항상 하는 얘기였고, 군대에서 고참이나 간부들이, 직장에서는 상사나 사수들이 항상 강조하던 가치관이라서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지던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보수 진보를 떠나 누구라도 이런 마인드에는 굳이 저항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열심히 그리고 빨리 집중적으로 일을 해치운 후 다 같이 맥주 한 잔 하면서 푹 쉬자는 (바이킹 문화 같은) 매혹에 쉽게 벗어나지 못할 수 있고, 일종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척되는 표현은 아마도 “하는 둥 마는 둥”일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슬렁슬렁(설렁설렁)”이라고도 한다. 일을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놀며 놀며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일을 빡세게 하든지 아니면 슬렁슬렁하든지, 그 판단은 관찰자 입장에서 내려지는 것이지 일하는 본인이 ‘나는 슬렁슬렁 일을 해야지’ 하며 결심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건 처음 캐나다에 도착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내 입장에서 보자면 캐나다 사람들의 모든 업무 스타일은 “슬렁슬렁”이라는 점이다. 역시나 군대 경험이나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서 들어온 탓일까? 나에게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쉰다”라는 가치관이 더 깊숙하게 박혀있었던 것은..??


밴쿠버에 처음 와서는 여기 사람들이 뭐든지 한번 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처음 들어간 렌트 아파트의 카펫이나 몇 가지 시설에 이미 상처가 나 있었던 것을 관리인이 확인하러 오기로 했었는데,  결국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우리가 직접 사진을 찍어서 관리인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슈퍼마켓에서도 계산대에 줄이 줄어들지 않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때 계산대를 확인해보면 여지없이 직원과 구매자가 수다를 떨고 있다. 별 내용도 아니다. 먼저 직원이 바코드를 잘 찾지 못하거나 바코드 판독기가 인식을 못한다. 그럼 구매자가 그걸 보고 기계가 고장이 났는지 몇 년 된 기계인지를 묻는다. 그럼 직원은 자기가 무슨 일이 있어서 피곤했었다든지, 오래된 기계를 주인이 안 바꿔준다며 주인 험담을 하든지.. 하며 수다가 시작되는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아직도 백 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차후 법정까지도 갈 수 있는 아파트 관리 상태라든지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줄들을 보면 마음속에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이제 여기도 예전보다 전반적으로 노동강도나 근무태도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손님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경우는 많이 없어졌지만, 기본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 다른 건 여전하고, 결국 시간이 흘러 이해는 못한 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얘네들은 참 여유가 많아” 라면서 빈정대며 말이다.


하지만, 곧이어 그렇게 여유라고 빈정댔었던 이곳의 문화에 감동받거나 도움을 받은 적도 많았다. 예를 들어, 밴쿠버 버스들은 입구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입구 바닥이 연장되어 휠체어나 유모차들이 쉽게 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런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탑승 우선권이 주어진다. 어쩔 때는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서 휠체어를 밀어 올리고, 안전한 자리에 고정해주기도 하는데 당연히 다른 승객들은 모든 게 끝날 때까지 탑승을 멈춘다. 이런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약간의 심쿵과 동시에, 사람이 살면서 여유를 가지는 건 좀 필요한 걸지도…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번은.. 사고라면 사고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전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올라가는데 열차가 도착한 듯한 소리가 난다. 이를 놓칠세라 아내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아… 언젠가부터 전철역에서 만큼은 아내의 뜀박질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플랫포옴으로 따라 올라 온 나를 발견한 아내는 휑하니 열차안으로 뛰쳐 들어가고, 나 역시 그 옛날 TV시리즈 <맥가이버> 오프닝 타이틀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슬아슬하게(사실은 문에 한 번 낀 후에) 열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소란을 피우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아내와 나는 뻔뻔스럽게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열차가 출발하기 전, (아슬아슬하게 열차를 놓친 것으로 보이는) 한 아줌마가 차창 밖에서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나를 부른다. 간발의 차이로 테이프를 끊은 100M경주 우승자의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자 문 아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아마도 내가 뭘 흘렸다는 얘기 같다. 온 몸을 더듬더듬해보니.. 아뿔싸.. 맥가이버 흉내를 내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린 것이다. 옆 자리에 앉은 중국인 아저씨는 (득의만만하게 웃다가 갑자기 온 몸을 뒤지며 사색이 되어버린) 나를 보더니 웃음을 참지못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아내와 나는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침착한 척하면서 서로 역할 분담을 하고 다음 역에서 헤어졌다.


정신없이 되돌아와 봤더니 내가 맥가이버 짓을 했던 그 승강장에서 한 역무원이 무전기로 누군가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서있다. 그에게 “나 여기서 핸드폰 잃어버렸는데.. 혹시..”라고 묻는데 어디서 익숙한 전화벨이 울린다. 철로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저 핸드폰 내 껀데..”하며 말을 잇는다. 역무원은 걱정말라고 하며 열차가 하나 더 지나가면 자기가 주워주겠다고 한다. 일단은 안심을 하면서, 어떻게 여기 핸드폰이 있는줄 알았냐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통제실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추정을 해보면 이렇다. 그 때 나에게 알려준 아줌마가 우정 자기 시간을 들여 승강장 벽에 비치된 응급전화로 통제실에다가 어떤 아시안이 철로에 핸드폰이 떨어뜨린채 가버렸다고 전화를 했겠지.. 그걸 보고 역무원 하나가 출동해서 전화기를 주우려고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역무원은 매순간마다 통제실에 보고를 하면서(예를 들어 “103호 열차 지금 도착했다.” “103호 열차 지금 출발했다”, “지금 철로로 들어가겠다”, “지금 주워서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만족하고 있다” 이런 식의) 결국 철로로 들어가 주워서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아내와 약속한 장소로 돌아오자, 아내는 또 우리가 탔던 열차의 다음 열차에 올라 타서 그 아줌마가 없는지를 살피다가, 어떤 아저씨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으면 일단 내 전화로 빨리 해보라고, 친절하게도 전화를 건네주는 바람에 내게 전화를 했단다(철로에서 울리던 전화가 그 전화였다) 당시엔 휴대전화 통화료도 비쌌었는데 .. 그런 친절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리하자면.. 내 전화가 떨어진 걸 보고 통제실에 전화해준 아줌마, 아내에게 핸드폰을 빌려준 아저씨, 몸소 철로로 내려가 주워다 준 역무원 들이 일을 하면서, 그들의 여유와 오지랖이 덜 떨어진 맥가이버의 핸드폰을 무사히 찾게끔 도와준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한번 감사.. 가뜩이나 눈꺼풀에 캐나다 콩깍지가 없어지지 않은 때였었는데, 그런 일을 한번 겪고 나니.. 아.. 정말이지.. 충성을 다짐하게 되었다.


작년에 팬데믹이 터지고, BC주에도 한국의 정은경 청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BC PHO(Public Health Officer : 공공보건 감독관) 매일 코로나 현황을 언론을 통해 브리핑하거나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브리핑은 주말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월요일에 3일치를 몰아서 발표해왔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팬데믹 상황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코로나 감염 현황이라는 집계도 사실 7일간의 평균이 분석에 유의미한 수치인 데다가,  아무리 보건위기 상황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PHO  직함이 그럴 뿐이고 자기 직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휴일에 쉬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당연하게 느껴지자, 오히려 한국에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이나 정은경 청장의 개인적인 희생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에서 30년간 익혀진 마인드가 이민생활 십수 년이 지나면서 차츰 옅어지는  아닌가 싶었다.


여전히 슈퍼 계산대의 줄이 줄어들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다른 여러 캐나다 문화나 시스템의 만만치 않은 만만디를 겪고 나면 지치게 되지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얘네 ‘여유라는 단어를 쓰면서 비웃는 일을 줄여 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BC PHO Dr. Bonnie Henry 말을 빌어보자면, “We do not know everybody’s story (사람에게는 각자 서로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이전 02화 이민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나의 이민기 상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