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불어닥친 결혼이라는 사건과 나를 설득시킨 몇가지 이유들
나는 나이 36에 결혼을 했다. 평생 결혼이란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내가.. 드디어 했다.
나는 지금의 내 신랑과 8개월 전에 만났다. 10년 지기 대학 동창의 소개팅으로... 지금의 신랑은 나와 소개팅 후 5번의 데이트를 하고 나서 캐나다로 돌아갔기에 8개월 연애 기간 중에 5번 만나고 결혼한 것이다. 그리고 난 10년동안 내 열정을 바쳐 잘(?) 버티며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고 캐나다로 넘어왔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허허..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결혼 전에 퇴사를 앞두고 회사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봤다.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누구랑 한다고?
" 괜찮은 거에요? " 사람들이랑 점심을 먹으면 사람들은 궁금해하면서 거기 가면 어떻게 살아요? 뭐 사고싶으면 어떻게 해요? 내가 5번 만났다고 하니까 놀라서 웃으면서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표현은 하지 않는 걸 알았다. 물론 축하도 많이 받았다. 회사에 어느 상무님은 '물가에 어린 아이를 내보내는 것 같다' 라고 표현했다. 불안하다고 했다. 코로나 상황도 심한데 굳이.. 조금 더 지나고 가지 그래요..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요. 나는 그래도 그 분들의 걱정을 고맙게 생각했다. 지금도.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부러워 하기도 하고, 축복해주기도 하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의 친구들과 가족 친지들은 이건 서로.. 전부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리고 나도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은연중에 우리 나이 대의 싱글 여자들을 노.쳐.녀.로 낙인 찍고 기피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게 더 오래 지나면 퇴물로 도장찍어버리는 사회라는 것을 나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게 인정하는 사회 문화 속에 살고 있기에 어쨌든 좋은 사람 만나서 하는 결혼은 좋은 일이니까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나는 20대까지 아니, 30대 초반 33세까지는 나의 인생 커리어, 돈, 안정적인 삶만 생각하며 달려왔다. 남자는 거추장스러웠고, 연애는 재미 없었고 지루했고 시간이 아까웠다. 정말 그랬다.
누가 같이 영화보자 밥먹자 하면 저 사람이 시간이 남아도나.. 놀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 연락하나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어느 날, 오후 3시 - 4시 쯤 "오늘 저녁먹을까?" 데이트 신청하던 익명의 어느 남자분에게 "나 조금 전에 밥 먹어서 배가 안 고파요." 라고 거침없이 이야기 하던 그러고 나서 나의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되찾은 것에 홀가분해 하던 내가 떠오른다. 하하;; 왜그랬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살았었다. 그런데 직장과 삶이 조금 안정되고 살만해지고 나자, 외로움이 찾아왔다. 예전처럼 일에 쏟아붇던 열정과 체력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고, 이제 일에 매진하던 삶에서 돈을 버는 것 외에는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싶다기 보다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서 같이 걸어가고 싶었다. 매우 강하게.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초중고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학교를 다니며 시험을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학교 선생님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 속에 은연중에 나중에 내 아들 딸은 한국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서 그랬는지.. 그냥 한국에서 서울에서 경쟁하며 무참히 밟아버리려고 하는 사회 속에서 공부하며 직업을 구하고 살아가며 견디며 올라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그걸 해왔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미래의 내 자식들에게는 그런 삶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아이도 낳기 싫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은연 중에 그래서 한국에서 잘 나가는 또는 잘 살고 있는 남자들을 만나도 그 사람들과 나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고 나의 미래를 함께 걸어갈 사람으로써 확신이 안 섰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 사람과는 떨어져서 연애하는 기간 동안 다른 이들이 수없이 주었던 외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물리적으로 만나고 손도 잡고 데이트하던 남자들과 연애할 때, 나는 많이 외로웠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낮은 자존감과 외로움이란 감정을 안겨줬다. 그래서 오래 가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미래의 일부분을 맡긴다는게 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나는.
우리는 비행기로 10시간 거리, 우리 사이에는 16시간이라는 시차
지금의 내 남편은 비행기로 10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떨어져 있었고, 16시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말에 토요일/일요일 두 번 3-4시간동안 화상 통화로 데이트를 했고, 매일 매일 서로 깨어있는 시간에 일하는 시간은 제외하고 채팅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롭지 않았고 항상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나를 외롭게 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나와의 시간 나와의 대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그 것을 가볍게 보거나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쉽게 흘려보내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종교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소망이었다. 어렸을 때 예배당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두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늙어갔으면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 때의 이미지가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나와 지금의 남편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전해 받은 모태 신앙이고,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 것이 두 사람의 소망이다. 일요일에 함께 예배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매일 식사 하기 전에 같이 기도하는 우리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같이 대화하는 것이, 같이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참 쉽다. 지금도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고 쉽다.
비슷한 가정 환경, 가정 교육, 그리고 교육 수준도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시간들이 자연스럽고 이래서 어른들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잘 산다고 했는가보다. 어렸을 때 유유상종이라는 4자성어를 배울 때 뭐 이런 말이 있어? 했는데 크면서 무릎을 탁 치며 맞아~ 그렇지! 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감하고 느끼는 한자성어와 속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