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비우고 해도 되는 반복 작업을 시작했더니 문득 먹고 싶은 것들이 뇌리에 하나씩 떠오른다.
반사적으로 그 맛과 질감이 떠올라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정신없이 손을 놀리며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밥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문을 잠그고 길을 나서 식당가를 향하는 순간.
머릿속에 떠 올랐던 먹고 싶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빨리, 싸게 먹고 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문득 인근에 베트남인 가족들이 운영한다는 쌀 국숫집이 생각이 났다.
늘 줄 서서 먹는 가게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시간이라면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냅다 달려갔더니 과연 그러하다.
부모와 딸로 보이는 가족들이 앉은자리 옆에 가서 조용히 앉아서 가게를 슬쩍 훑어 보았다.
벽에는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좋은 식자재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xxx가족 3대에 걸친 레시피를 사용해 일일이 수제로 만든 베트남 음식들을 맛보세요"
가무잡잡한 베트남인 다섯이 오픈 주방의 작은 가게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일하고 있다.
아하! 딱 보아하니 그림이 나온다.
부리부리한 눈을 번뜩이며 홀과 새로 들어온 나를 흘려 바라보며 주방에서 육수통 안의 무언가를 연신 휘젓고 있는 있는 사람은 아버지.
그 옆에 튀김기에서 짜조를 열심히 튀기는 아줌마는 엄마.
모자를 거꾸로 쓰고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설거지 통과 홀 사이를 오가는 청년은 아들.
홀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광대뼈가 도드라진 아가씨와 웃으며 다가와 어설픈 한국말로
"한 명이에요?"묻는 아가씨는 딸들이다.
슬며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쌀국수와 수제 짜조 한 접시를 주문하곤 핸드폰을 바라보는데 막 옆 테이블에 음식이 나온다. 잠시 달그락 거리며 음식을 맛보다가 딸이 흐뭇한 기색을 담아 말한다.
"엄마! 여기 국물 맛 죽이지 않아? 여긴 다른 곳 하고 다르게 수제로 만들어서 확실히 달라!"
엄마가 말을 받는다.
"네 말 듣고 보니 진짜 다른 거 같긴 하다."
" 짜조도 여기서 직접 만든거래!"
음식에 대해서 웬만해선 잘 기대를 하지 않는데 귓전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갑자기 기대감이 더 부풀어 오른다.
잠깐을 기다리니 죽이는 국물의 쌀국수가 테이블로 도착했다.
서둘러 국물부터 몇 수저 맛보았다.
먹는것을 멈추고 잠시 침묵하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오픈 주방 안을 바라보았다.
오픈 주방 선반 맨 위쪽에 박스가 가득 놓여 있다. <쉐프스 베트남 쌀국수 농축액 4.5kg> 박스가 줄 지어 수납되어 있다.
그 아래쪽 선반에도 각종 공산품 식자재 박스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계산을 마치고 화장실을 들리고자 건물 뒤편으로 돌아갔더니 주방 뒤편에 <베트남 짜조-냉동보관요> 문구가 적힌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 순간 가게 주인의 천재적인 상술에 감탄하고 말았다.
베트남인 가족은 업주가 만들어낸 허구였던 것이다.
며칠 뒤. 친한 부동산 사장에게 물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알았냐며 놀란다.
건물주 아들이 베트남인들을 연령별로 고용해서 세팅한 가게가 맞단다.
결국 벽 중앙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식자재는 거짓말을 시키지 않습니다"라는 말만큼은 진실이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업주는 대놓고 수제라며 허위광고를 하고 있었고, 손님들도 뻔히 눈에 보이는 공산품 박스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 가게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흔한 일이다.
수제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본다.
이곳 섬에서는 모든 것을 수제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먹던 거의 모든 외식품목을 모두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
낮은 회전율 덕분에 매일 냉동과 해동 사이를 오가는지라 신선도 떨어지고 맛 떨어지는 음식들을 소비하는 것도 힘들고, 애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할 업장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다가 최근에는 아이스크림도 직접 저어 만들었다.
고가의 다크 초콜릿과 헤비 크림으로 만든 아이스림의 맛은 코코아 파우더와 탈지분유로 만든 공장 아이스크림의 맛과 거의 다르지 않았고 비싼 망고를 잔뜩 넣고 헤비 크림을 저어 만든 진짜 망고 아이스크림보다 공장에서 만든 망고 퓌레와 망고향 그리고 분유를 넣은 아이스크림이 훨씬 맛있었다.
현대 식품공학의 경이로움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내가 집 근처에 있던 수제 젤라또 가게를 언급했는데 수제 젤라또도 수입한 젤라또 파우더를 넣어 만든다.
막강한 자본, 그리고 과학과 공학을 배경으로 한 압도적인 기술력은 이미 개인이 만든 수제의 영역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극대화된 효율과 이윤추구>라는 규격품 식품경제의 특징 때문에 개인이 맞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량생산과 이윤추구를 위해 비어버린 과정과 맛 따위의 디테일을 <수제>의 방식으로 교정하거나 추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제란 손으로 만들었다는 원래 의미를 넘어 양산품 이상의 퀄리티를 내는 프리미엄 제품을 의미하는 것이 원론적인 쓰임새다.
원론이야 어떻든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여느것들이 그렇듯 수제의 의미 역시 남용되어 왔다.
쌀 국숫집처럼 수제가 아닌 것을 수제라 판매하는 집도 있지만 유사한 형태로 <수제 돈가스>란 이름의 제품을 구매해서 판매하는 '수제 돈가스 전문점'이나, <천연발효종 믹스>란 이름의 제품을 구매해서 빵을 만드는 천연발효 빵집도 있다.
이런 업장은 제품명이나 스타일이 <수제>스럽다.
또 다른 수제의 형태는 조금 묘하다.
양산품을 섞어서 만드는 수제의 형태가 그것이다.
예전 집 밑에 있는 돈가스집이 그런 형태인데 그 업장은 가장 주력하는 광고카피가 <수제>였다.
<저희는 모든 식자재를 매장에서 수제로 만듭니다>
전단지부터 가게 입구, 메뉴판 표지까지 어디에나 크게 광고하는 형편인데 정작 소스는 시판 돈가스 소스에 <오뚜기 크림스프>와 케첩을 일정 비율로 섞어서 만든다.
직접 업장에서 만들기는 하니 수제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양산품을 일정 비율로 조합하는 것뿐이니 수제의 원론적인 의미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지라 애매하다.
단순히 맛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비율 조합일 뿐 손님이 기대하는 수제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수제>는 같은 품질이거나 보다 저품질인 상품마저도 더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게 하는 마케팅 언어로 변질되었다가 급기야 숱한 대량생산품을 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는 방편이 되었다.
예로 <수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숱한 공산식품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마트의 매대보다는 전문식당 업주를 위한 식자재마트에 더 자주 등장하는 이런 이름의 제품을 살펴보면 나름의 특징이 있다.
<수제 돈가스>라 이름 붙은 제품은 그렇지 않은 제품에 비해 고기의 두께가 더 두껍고 빵가루 입자가 더 크다.
다른 자재도 유사하다.
<수제>란 이름이 붙은 자재는 원재료 함량 비율이 타제품에 비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수제>는 더 이상 방법이 아니라
콘셉트 또는스타일이 되어 소리 소문 없이 규격품 경제에 편입되어 가치없는 것을 상징하는 <일용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최고의 대장장이들과 기계공들이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만들었다는 '시발자동차'가 공장에서 생산된 닛산의 블루버드에 밀려 몰락한지 60년이 넘었건만 음식시장에는 아직도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만든것이라도 '손으로 만들었다면' 공장에서 만들어진것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 살아 숨쉰다.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 버거의 대척점에 수제버거가 있다.
수제버거를 자처하는 것들의 일반적인 모양을 생각해 보면 '도대체 음식이란 무엇인가'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뚱뚱한 패티에, 그 못지않게 뚱뚱한 버거 번, 과하게 많아 넘쳐흐르는 소스가 수제버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버거란 구조 전체를 한입에 맛볼 수 있어야 하는 음식인데 이건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다.
기다란 이쑤시개로 어렵사리 고정해서 접시에 담아온 버거라 이름 붙은 괴식덩어리는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려 봤자 한입에 먹기 어렵다.
서브된 방식도 곤혹스러움에 한몫을 더해서 간편하고 깔끔하게 먹어야 하는 버거를 칼로 썰어서 난잡하게 흩트려 뜨리게 되면 결국 재료를 따로 먹게 되기일쑤다.
수제의 형식이 이러하다보니 집 옆에 쉑쉑 버거가 처음 생겼을 때.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두께 적절하고 수분, 당도, 무르기 모든 게 적절한 버거 번과 잘 눌러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패티, 절묘한 밸런스의 소스, 두께, 전체 재료의 조화로움이 잘 구현된 버거를 깔끔하게 베어 먹으며 수제버거의 부적절함에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오래전에 <수제>에 목을 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내 의식은 음식뿐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는데, 음식에 있어서도 <수제>라는 방식이야 말로 규격품과 기업, 그리고 규격품을 사용하는 숱한 업장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는 방식이라 생각했었고 베이컨 살치차 판체타 따위의 햄 종류부터 마요네즈같은자잘한 것들까지모두 손으로 직접 만들었었다.
그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큰 실수였고 시간이 흘러 내 생각은 여러모로 바뀌었는데, 그 무렵에 함께 일하던 직원이 어제 오래간만에 전화가 왔다.
작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셰프님이 성업을 하던 자리 바로 옆에 건물을 올리게 되었으며 그 건물 1층에서 식당을 열고 혼자서 운영할 예정인데 예전의 나 혹은, 돌아가신 그 셰프님처럼 모든 걸 수제로 만들어서 고급화시킨 음식을 만들어 팔면 승산이 있지 않겠냐고 하며 메뉴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하며 의견을 묻는다.
웬만해선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 편이지만 의견을 구해오니 답을 해 봤다.
"일단 그 셰프님의 경우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였고 그 동네에서 고가는 어려울 거 같아요. 일단 혼자서 하니까 토마토소스 같은 경우엔 라구 소스라고.. 고기 한점 없지만 라구라는 브랜드네임이 붙은 토마토소스가 있는데 그게 한 4리터에 9천 원 정도예요. 토마토홀과 가격차이가 거의 없는데 그걸 사서 쓰는 업장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으니 그걸 사서 맛을 보고 괜찮으면 그걸 쓰는건 어떨까요. 맛이 맘에 안 들면 적당히 좀 보완을 해 보든지.."
그녀는 하하 웃더니 답했다.
"사장님 전 그런 싸구려는 하고 싶지 않아요"
싸구려라는 말이 탁-맘에 걸린다.
"어차피 토마토홀 까서 쓸 텐데 그 토마토홀이란 건뭔 고급인가? 거기다 뭘 넣어봤자 향신료나 마늘 혹은 양파 정도 넣을 거 아닌가요? 맛이 부족하면 치킨스탁 같은 거 넣을 거고.. 거기에도 전부 똑같이 들어있을 텐데?"
내가 묻자 그녀가 그런 나를 낯설어하는 어조로 말을 흐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수제라는 건 양산품보다 결과와 과정면에서 월등해야 한다.
양산품과 같은 결과나 더 못한 결과를 낳을 거라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만드는 사람은 왜 수제로 만들어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사 먹는 사람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단어가 가진 형식 혹은 방식에 취해, 무의식적인 자만심에 빠져 업에 본질이 무엇인지, 또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에 대해 간과하거나 오판하는 실태를 범하는 부적절함 역시 경계해야 한다.
우리 음식문화 곳곳에는 허구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해석할 수 없는 것을 신으로 추앙하던 원시시대 인간처럼 잘 모르거나 해석하기 번거로운 것에는 신화적인 상상력을 가미해 맹신해 버린다.
그 상상력에 기생해 자영업자 카페에는 얼치기 레시피를 1천,2천만 원에 팔거나 사는 일도 있다.
사이다와 키위주스 통조림 국물을 넣은 막창장 레시피를 무슨 극비 레시피랍시고 5백만 원에 거래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과거엔 빈번했고 지금은 빈도는 줄었겠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수백~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그 비밀 레시피라는 것들은 사실 도서관에 무료로 비치된 요리책 레시피보다 열등한 것이 대부분이다.
도서관에 있는 요리책 레시피는 그야말로 최고의 레시피들이다.
저자들 면면도 그러하거니와 과학적 근거도 합당하고 접근방식도 정확하다.
하지만 음식장사에 접근하는 초보를 공략하는 얼치기 레시피는 그렇지 않다.
큰 고민 없는 대중들을 유혹하는 신비로 점철된 광고언어처럼 다분히 기만적이다.
tv 프로그램은 그런 허구성이 기형적으로 극대화된 영역임에 분명하다.
얼마 전 국숫집에서 우연히 본 무슨 장인 프로그램 재방송에서 일본식 메밀소바의 장인이 나왔다.
보는 내내 입을 딱 벌리고 있는지라 국수가 다 불어 버렸다.
전국의 유명한 메밀소바를 모두 먹어보고
연구했다는 장인의 엄청난 레시피를 잠시 살펴보자.
월 매출 1억을 찍는다는 그 식당 비법은 대략 이렇다.
먼저 간장..
고춧잎과 함께 시판 왕오징어 다리를(사카린과 msg가 듬뿍 들어간 바로 그 시커먼 오다리다.)
푹 끓인 다음 그 오징어 다리를 건져서 조개와 함께 가스불에 직화로 굽고.. 그 오징어와 조개를 간장에 넣고 다시 끓여 소바용 간장 완성한다.
다음은 육수
배춧잎 사이사이에 뱅어포를 넣고
그걸 다시 찐 다음...
북어대가리와 다시마 등을 잔뜩 넣고 끓인 물에 뱅어포 삽입 배추를 넣고 푹 고아서 줄인 다음 물을 넣고 희석하면 육수가 완성된다.
쪄서 익힌걸 다시 끓여서 익히고 그걸 또 한참 줄인 다음 거기다가 다시 물을 넣는다.
모든 과정이 메뉴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이 레시피가 사실이라면 장인이라는 그분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음에 분명해 보인다.
그야말로 뻘짓의 장인이고 바보짓의 달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면 차례다.
순수한 메밀가루에다가
물 대신 다시마 진액으로 반죽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메밀소바는 다른 메밀과는 달리 뚝뚝 끊어지지 않고 쫄깃쫄깃하단다..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대잔치다.
이 분들이 몰라서 이런 음식을 만든다고 주장하거나 이런 영상을 제작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출자도, 출연자도 양쪽 모두 돈 때문에 얄팍한 거짓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는것이다.
방송맛을 본 같은 상인회 상인들로부터 얼마주고 출연해서 방송 뒤 얼마씩 벌었다는 돈 놓고 돈 먹기 경험에 대한 고백과, 늘 손님 하나 없던 방송 맛집이 얼마나 긴 줄을 서는지 본 뒤부터는 하나의 사업 방편으로써 이해는 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도 크게 다르진 않다.
작년에 봤던 치킨 광고가 생각난다.
잘 생긴 남자 배우의 멋진 모습과 함께,
one, two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더니.
"이제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딴따라~
"오븐에 한번 굽고,
다시 기름에 한번 더 튀긴 치킨.."
딴따~~
"그래서 치킨이 아니라 요리"..라는 광고 문구가 연이어 나온다.
지글~지글~
반죽을 입힌 치킨을 오븐에 한번 굽더니 그걸 다시 촤아아~ 튀기는 장면이 나온다.
광고속 오븐안 치킨은 프라이드 치킨의 모습이다.
그 모습부터 거짓이다.
그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순서를 바꿔도ㅣㅣ1 거짓이다.
오븐에 굽고나서 튀긴다고 했으니...
어떤식으로도 거짓이 성립하는데, 그 어느방식을 채택한들 그렇게 조리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육류 중 가장 지방 함량이 적은 닭은, 기름기가 퍼석퍼석한 단백질 덩어리가 될 것이다.
튀김 기술의 일인자라는 곤도 후미오 상의 주장에 의하면 튀김은 기름과 밀가루를 이용한 찜요리다.
그렇게 두 번 과조리를 해야 할 까닭이 전혀 없는.. 아니 그렇게 조리해서는 안 되는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그렇게 과조리 한 치킨은 치킨이 아니고 요리가 되는 것이고.. 다른 정상적인 조리과정을 지킨 치킨들은 "아무거나"따위가 되는 것이란 광고는 부적절하다.
대한민국의 내놓으라는 음식 전문가들이 모여 있을 그 대기업이 몰라서 그런 광고를 찍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오븐을 구비한 피자집들을 타깃으로 성장한 오빠닭류의 로스트 치킨 프랜차이들이 십수년간 심어놓은 이미지. <기름기가 쫙 빠져 담백함> 그수식어가 가진 이미지를 차용하여 지방에 대한 고객의 죄책감을 경감시켜 구매욕구를 자극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문제는 이런 허구와 신화들이 음식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멀쩡한 업주들의 '정상'적인 음식을 "정성이 없고 평범한 것"그리고 "아무거나"따위로 전락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때론 그 특별함이 낯 뜨겁다.
치킨은 굳이 특별할 필요가 없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치킨은 그 자체로 이미 천재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이런 허구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까닭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었다.
얼마 뒤. 데이비드 오길비의 글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느끼는 것에 관해 아무 생각이 없고,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며 얘기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은 합리성을 추구한다.하지만인간의 선택은 무의식에 의해 이뤄지며 뇌는 그 선택에 대한 합리성을 도출하기 위해 이유를 갖다 붙일 뿐이다.
뇌는 그렇게 논리적인 답을 한 번 찾아내고 나면 더 이상 더 나은 답을 찾아보는 것을 멈춘다
이런 인간의 자기기만이 인간이 스스로를 합리적고 영리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이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1. 매일 매끼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또 뭘 먹어야 할지> 만으로도 고민에 빠져야 하는 현대인의 사치스러운 고통에 이런 부분에까지 고민을 더할 여유는 없어서
2.주어진 정보를 주어진대로 받아들이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비판 없이 수용해 버리는게 이득이라서.
3. 조금이라도 선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표이기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해 버리려고
논외로 음식에 대한 가장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환상은 엄마의 '손맛'일지도 모른다.
손맛은 참 감정적인 맛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대화.
"엄마, 엄마가 해 주던 닭볶음탕 그거 맛이 안 나는데 어떻게 만들어?"
"고춧가루 한두어줌 넣고 고추장 약간 넣고 간장 한자밤 물 자작하게 넣어서 국물 자박하게 끓이면 돼.간 보고 안 맞다고 고추장 넣지마 고추장 넘 많이하면 텁텁해서 별로더라 얘 ..소금 한꼬집씩 넣어가며 간 맞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