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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Nov 26. 2021

음식물 쓰레기.치킨이 되다.

인간이 만든 연금술 치킨


19세기 책 '미국인의 가정 매너'에서는 이런 장면이 묘사된다.

거리 한가운데에 음식물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고, 거리에 풀어놓은 돼지들이 그걸 처리하는데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영국인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는 장면이다.

지금으로썬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가축이 된 이후 돼지는 인류가 사는 곳 어디에서나 청소부 역할을 했다.

돼지는 끔찍한 쓰레기들을 맛 좋은 지방으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였다.

도시인들도 청소부로 돼지를 이용했지만 미국 남부의 농장들 역시 작물과 음식찌꺼기 처리는 온전히 돼지들에게 맡겼다

돼지들은 음식물과 작물찌꺼기를 맛있는 기름으로 바꾸었고  때문에 돼지기름 '라드'는 남부 농장에서 남아도는 식재료로 쓰였다.


남부 농장의 리치한 백인들은 소나 돼지요리를 즐겼고

닭요리는 비교적 즐기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 먹게 되면 오븐에서 구운 로스트 치킨을 먹었는데 백인들은 가슴살 따위의 살코기만 먹고 뼈가 많은 날개나 목 같은 부위는 바닥에다가 곤 했다.

흑인들은 백인들의 식사가 끝나면 식탁아래 버려진 닭의 자투리를 가지고 와서 서아프리카 특유의 향신료 조리법과 스코틀랜드식 레시피를 접목해서 남아도는 돼지기름-라드-에 딥 프라이를 했다... 고 한다.


이'설'이 가장 널리 퍼진 프라이드치킨의 유래다.

90년대 길거리 노점계를 장악했던 전기구이 통닭의 비루한 최후 탓일까?

아니면 코스트코에서 사면 안 되는 음식 베스트 5안에 들어가는 로스트 치킨 덕분일까..

개인적으론 백인들이 즐겨 먹었다는 로스트 치킨은 오븐요리 중에서 가장 맛이 없다고 생각한다


닭은 빈 캔버스라 불릴 정도로 중립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살이 섬세하고 각 부위의 특성이나 크기가 상이한 까닭에 균일한 조리가 쉽지 않다.

또 닭의 지방은 살과 껍질 사이에 미량 존재하는 까닭에 로스트치킨처럼 일괄적으로 굽는 오븐 조리는 비효율적이며 조리가 끝난직후 얼마동안 크리스피한 껍질 역시 눅눅해지게 되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킨은 천재적인 음식이다.

갖은 양념은 마치 다채로운 물감과도 같다.

반죽은 흰 캔버스에 개성을 더 할뿐 아니라 얼마 없는 닭의 지방을 보호하, 내부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을 막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기름 속에서 단단하게 굳은 밀가루 껍질엔 기름이 스며들어 닭의 태생적 한계인 '부족한 지방'을 보완하고  크기가 달라 조리시간이 상이한 부위별 차이를  평준화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반죽 아래 얇게 깔린 닭의 껍질은 속옷이 되어 내부의 수분과 반죽을 격리시켜 기름에 튀겨진 바삭한 옷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


천재적인 음식인 치킨은 종종 인종차별의 도구로도 쓰이는데 유력한 유래설 때문인지..

흑인에게 허용되었던 유일한 가축이 닭이었다는 사실 때문인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내겐 치킨을 먹을 때마다 오르는 강렬한 이미지가 하나 있다.

때는 18~19세기 즈음이다.

대농장주인 제임스가 친구 백인들을 불러 디너파티를 벌인다.

(얼굴은 언제나 타란티노의 장고에 나오는 디카프리오의 얼굴이다)

오만한 얼굴들이 늘어선 식탁 위로 주방 책임자인 흑인 노예 앨리스와 다른 여성 노예들은 큰 접시 가득 로스트 치킨을 날아온다.

게걸스럽게 맛대가리 없는 가슴살 따위를

성의 없이 먹은 백인들은 살도 없고 먹기 성가신 목이나 날개 따위를 더러운 바닥에 대충 버린다.

케이크와 홍차 따위로 입을 가신 백인들이

식탁에서 일어나 포커를 치러 거실로 가 버리자,  남은 앨리스와 노예들은 백인들이 버린 날개와 목을 주섬주섬 모아 담는다.

작은 보자기에 싼 닭의 잔해를 움켜쥐고 누가 볼새라 곁눈질하며 주방으로 돌아가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앨리스를  맞이하는 제인 이미 라드를 한 냄비 가득 끓이고 있다.

슬프게도 발치께엔 아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침을 삼키고 있고 다른 노예들은 주방일에 전념하는 사이 제인과 앨리스는 재빨리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손을 맞춰 밀가루를 한겹 뭍힌다음 한쪽 작업대에 놓인 보울 속, 갖은양념과 향신료가 배합된 반죽을 백인들이 먹다 버린 찌꺼기에 덧씌우고 마침내 뜨겁게 끓고 있는 라드 속에 넣고 딥 프라이를 한다.


아아-


그렇게 요리는 연금술이 된다.

음식물 쓰레기는  돼지가 되었고, 

돼지는 라드가 되어 다시 음식물 쓰레기가 된 닭의 잔해를 만나 전혀 다른 존재로 승화된다.

맛없던 로스트 치킨의 잔해는 연금술사의 냄비 속에서 황홀한 황금색으로 다시 태어난다.

때마침 위스키가 떨어져 일어난 대농장주 제임스가 술 진열장이 있는 서재로 향하다가 주방의 좁은 문틈에서 러 나오는 그 미친 냄새를 맡게 된다!

세이렌의 노래소리에 넋을 잃은 선원처럼 한줄기 마력의 향기를 따라 벌컥-주방문을 여니 흑인들이 모여 찹촵 거리며 무언가를 먹고 있는데 검은 어깨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대략 이렇다.

"바삭바삭바삭"

넋을 잃은 제임스가 그들을 밀치고 홀린 듯 손에 들린 황금색 조각들을 바라보다가 라드가 잔뜩 끓고 있는  팬으로 다가가 안 들여다보 부릅뜬 눈으로 경탄성을 외친다.


"세상에!!"


검은 튀김냄비 속, 매끈거리는 돼지기름이 지옥불처럼 들끓고 있고 반투명한 밀가루 옷을 입은 닭고기가 황홀한 금색으로 튀겨지고 있는 게 아닌가!

남의 인생을 갈아 넣어 자기 욕망을 채워 온

탐욕스러운 인간 중 한 사람인 제임스에게  장면은 흡사 포르노그라피!!

각기 종이 다른 지방들과 탄수화물과 단백질.

갖은 향들이 구분 없이 나뒹구는 욕망과 탐욕의 완결판이었다!

제임스가 조금 전 자신이 버렸던 음식물 쓰레기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으로 되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앨리스는 조용히 전율하고야 말았다.

이 순간 앨리스는 흡사 신에 다름 아니었다.

죽음을 딛고 부활을..

진정한 의미의 창조를 완결시켜 낸 것이다.


제임스는 흑인 노예들의 손에서 윙을 한 접시 빼앗아 포커판이 벌어지고 있는 거실로 가져간다.

거실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다음날부터  제임스의 친구들은 모두.

그동안 여성 노예들을  속을 지분거려왔던 것처럼 남몰래 흑인들의 식탁마저 수시로 지분거렸다.

백인들이 프라이드치킨을 대 놓고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고작 100년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흑인이나 먹던 음식을

백인님들 체면에 대놓고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 시절 프라이드치킨은 검은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로 염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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