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소진을 위한 연차
5년차정도의 주니어 엔지니어였을 때는, 연차는 아주 계획적으로 길게 사용했었다.
연말이 되면 늘 따뜻한 나라를 찾아 떠났고, 가까운 나라보다는 먼 나라 여행을 즐겨 다녔다.
주어지는 기본연차에 1-2개뿐인 가산연차까지 탈탈 털어 썼지만, 늘 모자라서 어떻게 하면 휴일을 잘 활용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연차를 쓸 때는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리더에게도 사전에 거의 6개월전부터 공유했었다)
그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수석엔지니어 3년차만에 연차가 남아서 허덕대고 있다.
연차소진을 위해서 억지로 연말에 연차를 쓸 줄이야.
수석엔지니어가 연차를 보내는 법과, 연차동안 업무처리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냥 쉬는 게 좋다
집에서 뒹굴어보기도 하고, 밀린 대청소도 했고, 요리도 해보았고, 잠도 실컷 자보았다.
카페에 나가서 쓸데없는 관찰, 맛있는 커피 마시며 일이랑 관계없는 블로그 등의 작업도 해보았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외출도 해보고, 오랜만에 친구들 일터에 내가 만나러도 가보고 뭘 해도 좋다.
특별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도, 휴일을 잘 보낼 수 있다.
OTT나 SNS에 시간을 소비하는 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제일 보람을 느꼈던 일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하지 않았던 운동.
가까운 뒷산에 올라가보고, 산책도 해보고, 안 가던 휘트니스도 가서 파닥거리며 운동도 했다.
여행은 옵션
급하게 여행계획을 세워보려 했지만, 이제 여행도 경쟁구도인지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어렵게 되었다.
여행을 위해 멀리 떠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가까운 곳 여행을 즐겨보기로 했다.
옆동네, 옆도시, 국내지방, 아니면 옆나라 정도.
꼭 유명맛집이 아니더라도, 동네에 가보지 않던 카페나 식당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다.
개인적으로 자연을 좋아하게 돼서, 옆도시의 수목원이나 공원에 가서 멍때리고 산책하곤 했다.
책으로의 도피
평소에 책 몇장 읽기가 그렇게도 어려우니, 연차를 활용해서 서점을 방문해서 베스트셀러든 평소 관심있었던 분야의 신간이든 책을 읽어본다.
늘 숙제처럼 다가오는 자기개발이나 회사생활, 리더십 관련 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번 연휴에는 연금 관련 책들과 뇌신경학 관련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속의 세상은 평화롭다, 필사책을 통해 연휴동안 내면에 잠들어있던 감수성도 끄집어내보았다.
의외로 요즘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다음 연휴 때는 꼭 고전문학을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이메일과 메신저는 off 모드
업무연락은 화이트스페이스라는 책의 방법론을 좋아하는 편이다.
비상시에 나에게 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하고, 그 사람만이 나를 방해할 수 있다는 원칙을 (마음속에) 세운다. 그 사람에게 결정권을 위임하고, 팀장에게도 이 사람이 대리결정권이 있음을 알린다.
중요한 것은 업무를 눈에 띄게 바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발팀 업무 중에 긴급이슈가 늘 있겠지만, 그리 숨 넘어가게 긴급하지 않은데 긴급하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늘 의심하자.
내 경우에는 차기 리더급 몇명에게 긴급연락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메신저말고 전화로 연락하도록 했다. 놀랍도록 전화 한통이 걸려오지 않았다. 메일은 부재중 회신을 걸었고, 메신저는 일부러 읽지 않았다.
휴가 중에도 메일과 메신저에 바로바로 응답하지 않으면 괘씸죄로 욕하는 문화가 있다면, 아쉽지만 따라야 할 것이다. 다만, 당신이 리더가 되었을 때 이런 문화는 점차 없애도록 하자.
수석 엔지니들이 전략적멈춤을 잘 실천할 수 있는 휴가를 보내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