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걸어내야만 했던 시간들을 견디어 이 곳까지 걸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열 발자국 나아왔을까. 기점까지 금방 내 되돌아 갈 수 있는 그 거리를 왜 이렇게 힘들게 버티며 올라왔나 싶었다. 나는 내가 직선으로 걸어왔나, 원형으로 둘러 걸었나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걸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걸어 나가야 하는지 애초에 계획하고 걸어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언제의 시기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으냐고. 나는 그러기 싫다고 말한다. 나는 단 한 번도 과거의 기억으로의 회귀를 소망한 적이 없다. 삶은 언제나 내게 커다랗고 무거운 짐 같았으므로. 언제로 가든 그때의 나는 축 쳐져 피곤한 몰골로 세상을 걷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한다. 비교우위로 인한 만족이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느 시점이건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금 있다. 미래의 너도 지금의 너와 별반 다르진 않은데, 그럼에도 살아낸다면 지금보다는 숨 쉴만할 것이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걸어보라고. 더뎌도 좋으니, 멈추지만 말아달라고. 멈추어 함몰되지만 말아달라고. 삶은 언제나 제자리 같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자리는 언제나 미세하게 변화해 왔다고. 그것이 좋든 싫든. 그 파동 안에서 너는 충분히 흥미로워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