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함은 당연한 거니까.
비 오는 출근길.
헬기 강하를 하듯,
접혀있던 우산을 순차적으로 펼쳐들며 지하철 출구를 나서는 사람들.
나도 곧 우산을 받쳐 들고 지하철을 나온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인데도 다들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한다.
나는 그들과 무관하게 차로 옆 다소 좁은 인도를 터벅터벅 걷는다.
구조물을 사이에 두고 인도와 키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있다.
가냘픈 나뭇잎들은 우산의 진행을 더디게 한다.
제법 큰 나무들은 경계를 침범해 인도로 넘어오기도 한다.
나뭇잎들의 방해를 무시하며 무심히 걷다가 우산의 끝이 침범해 온 나뭇가지에 걸린다.
무의식적으로...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우산 전체가 빙그르르 회전하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나뭇가지를 지나친다.
헐거운 손 안에서도 우산은 안정감이 있다.
꽉 쥐고 있었다면 손목에 무리가 가고 물방울이 튀었을 것이다.
그렇다.
느슨하게 살아야 한다.
단단하게 쥐고 있는 의식을 헐겁게 놓아야 한다.
의식을 헐겁게 해 무의식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보다 넓은 시야로 살 수 있다.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다.
알 수 없는 불안감,
해야 한다는 강박감,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분노...
그리고 늘상 있는 뒷 목 뻐근함도...
내가 날 꽉 틀어쥐고 있어서인 듯하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오늘도 느슨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다고 아무 일도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흔들리지도 않는다.
가방에서 꺼낸 우산을 손에 들었을 뿐인데 어깨가 가볍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도 잘한 거란다. 최선 속엔 언제나 허술함이 존재하니까. 최고가 아니니 허술함은 당연한 거니까. 나는 그런 허술함을 사랑하면서 좋아해. 그 허술함에서 사람 냄새가 올라오거든.
「우리는 매일 한 뼘씩 자라날 거야 - 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