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건강검진 결과에서 ‘암’이라는 단어를 마주한 뒤,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한 가지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장내시경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내가 아직 대장내시경을 안 해봤다는 말에 기겁했다.
“너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래!”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장내시경에 대한 두려움은 차라리 큰일이 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컸다.
그 공포는 국민학교 1학년 때 6학년 언니의 ‘불주사’ 경험담을 듣고 6년을 벌벌 떨며 살았던 기억과 닮아 있었다. 대장내시경 선배들의 검사 전날 약 이야기도 그 불주사 무용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미루다 연말에 받았던 건강검진이 내 목숨을 한 번 살려준 터라 이번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검진센터에서 보내온 두 개의 약통과 설명문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아, 드디어 이 지옥의 길을 걷는구나.
저녁 8시. 약속의 시간.
설명서대로 가루를 타고 물을 섞었다. 투명하고 찰랑거리는 그 액체를 한참 노려보다가, 조심스럽게 한 모금 삼켰다.
“......!”
오, 마이 갓, 세상에나!
이건 이온음료에 MSG를 쏟아붓고, 정체불명의 짠맛과 미끌거리는 탄산감까지 얹은 맛이었다. 누군가 연구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불쾌한 맛없음’을 집요하게 설계한 게 분명했다.
“이 정도 고통도 없이 대장을 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약이 나에게 호통치는 것 같았다.
어쨌든 한 통을 비우고 설명서대로 생수를 마셨다.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오갔고, 두 번째 약병까지 비웠을 즈음엔 내 장은 태어난 이래 가장 순수한 상태, 아니 거의 락스로 멸균된 상태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에 아침 일찍 건강검진센터로 향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센터는 나처럼 숙제를 미룬 사람들로 북적였다.
검사를 위해 엉덩이가 뚫린 민망한 바지로 갈아입고, 침대에 옆으로 누웠다.
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자 코끝이 알싸해졌고, 그 순간 필름이 끊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침대가 아니라 회복실 의자였다.
“단단님, 검사 끝났어요. 이제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 말에 나는 코드가 입력된 로봇처럼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분명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왼발과 오른발이 번갈아가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 위를 올려다보니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납치대기실’
납치를 당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며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여기 남자탈의실이에요.”
나는 “어머나” 대신 “네.”라고 공손하게 대답하고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어쩌면 다른 세계의 납치대기실로 향하던 나를 그 남자가 현실로 끌어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앉아 있으니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그래서 수면내시경 후 운전을 금지하는 거구나.
운전대를 잡았다면 도로 위 어딘가에 쓰여 있었을 ‘납치대기실’ 표지판을 보고 아무 의심 없이 그 길로 핸들을 꺾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