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위의 3KM

초보 러너의 아침 달리기

by 김단단

헉, 헉…


매일 아침, 나의 하루는 여의도 대로변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트레드밀 위에서 시작된다. 계기판의 목표거리는 3km.

숙련된 러너라면 “3킬로? 한 발로 뛰어도 20분이면 끝나지.”라고 말하겠지만, 나 같은 초보 러너에게 출근 전 3km는 해발 3,000미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한 고난의 행군이나 다름없다.


사실 나는 아침잠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잠을 잘 자는 것이 하나의 자부심일 만큼 잠을 사랑해 왔다. 특히 아침 이불속에서 보내는 1분은 가끔 ‘이게 죽음이라면… 그냥 죽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게으른 잠보인 내가 아침에 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최근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대유행을 하면서, 주변 친구들이 주사의 성은을 입어 줄줄이 감량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벼락뚱뚱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온몸을 감싸던 그때, 운명처럼 한 유튜브 쇼츠를 보게 되었다.


한 유튜버가 한 달 동안 하루 10km씩 달리며 살을 빼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이었다.

한 달 만에 무려 8kg. 그 효과는 짧은 영상 안에서도 너무나 확실했다.


그래, 맨손으로 달려보는 거야. 그동안 달리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십여 년 전 10km 대회에 나가본 전력도 있고, 그깟 3km쯤이야 대수겠어 싶었다.


그런데, 대수였다…


트레드밀을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 위의 시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헬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속으로 되뇌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160번 버스가 여의도 환승센터를 지나 트윈타워 앞에서 좌회전하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본 뒤 다시 계기판을 보면… 고작 45초가 흘러있다.


트레드밀의 시간은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근처처럼 느리게 흐르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5분이 지나면, 저 바깥세상에서는 5개월쯤 흘러 있는 거 아닐까?’


그래도 전광판에 1.5km가 찍히는 순간, 묘한 쾌감이 찾아온다.

숨은 넘어가기 직전이고 이마에서는 땀이 폭발하지만, ‘와, 나 반이나 뛰었어!’

그 사실 하나로 가슴속에서 잔잔한 성취감이 올라온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발바닥 소리는 규칙적인 드럼 연주처럼 귀를 때린다.

이제부터는 진짜 ‘기록 단축’의 시간이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연타한다. 8.5, 8.8, 그리고 9.0.


갑자기 빨라진 벨트 속도에 다리는 비명을 지르고 숨은 헐떡거리지만, 내 숨소리에 집중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머릿속에는 오직 거리와 속도, 그리고 ‘빨리 끝내고 싶다’는 간절함만 남는다.


마침내 전광판에 ‘3.00’이 찍히는 순간. 나는 찰나의 성취감에 취해 재빠르게 쿨다운 버튼을 누른다. 벨트가 0.0이 될 때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걷는다.


땀을 씻고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묘한 승리감이 실린다.

오늘 하루 내가 마주칠 수많은 빌런들보다 먼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나의 게으름’을 KO 시키고 왔다는 승리감이다.


사무실로 올라오며 워치로 소모 칼로리를 확인한다. 소모 열량 197칼로리.

잠시 후 1층 커피숍에서 내 손에 들릴 카페라테 한 잔이면 원상 복귀될 허무한 숫자다.

‘아, 그 유튜버처럼 나도 과연 살을 뺄 수 있을까?’ 잠시 현타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도, 평온으로 가득한 이불속을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다시 이 블랙홀 위로 올라설 수 있을까?


살이 얼마나 빠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른 아침 내 게으름과 싸워 이겼다는 이 으쓱한 기분이 다시 나를 트레드밀 위로 데려다줄 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