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재발견

단원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를 보며 든 소회

by 김단단

친구의 추천으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게 되었다.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전혀 아니었다.


음악이나 연극,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에 비해 그림은 평면 위의 선과 색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색채의 활용이 미술의 본질이라고 믿었기에, 제한된 선과 절제된 색으로 표현되는 한국 미술은 어딘가 밋밋하다고 단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나를 한 방에 쓰러뜨렸다.

책장을 넘기다 한 그림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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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소림명월도'.

작은 뜰에 서 있는 마른 나무들, 그 위로 둥근 보름달이 조용히 떠 있다. 달빛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들을 가만히 비추고 있다.


나는 어느새 그 뒤뜰에 서 있었다.
하염없이 달을 올려다보며. 이유 없는 서러움과 외로움이 가슴 깊이 차올랐다.

도대체 그는 붓끝에 어떤 마음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이 그려진 해는 1796년, 그의 나이 쉰 둘.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연풍 현감에 올랐던 그가 행정 관리와 가뭄 대처 미숙으로 탄핵을 당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바로 다음해였다.

부와 명예, 그리고 전폭적인 지지자를 잃은 뒤의 밤. 그가 마주했을 달빛은 어땠을까.

그 사실을 알고 다시 보니 이 그림은 더 이상 고요한 풍경이 아니라, 한 인간의 깊은 상처였다.


세월이 흘러 60대의 그는 또 다른 걸작 〈주상관매도〉를 남긴다.

산 위의 매화와 배 위에서 꽃을 바라보는 두 사람. 이 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비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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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백 속으로 아련한 마음이 스며든다.
붓은 멈췄지만 뜻은 이어진다는 필단의연(筆斷意連). 비어 있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사실을 이 그림은 담담히 증명한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힘을 줄 때는 주고, 뺄 때는 빼는 법. 여백을 남길 줄 아는 태도.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모두 채우려 애쓸 때보다, 조금 비워둘 때 더 깊어지는 것.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당장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작가가 알려 준대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천천히, 심드렁한 관람객의 시선이 아닌 겸손한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리라.


200년 전의 달빛이 오늘도 여전히 나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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