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부심 가득한 술꾼의 금주 이야기
대학 시절의 나는 술을 참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
나의 왜소한 체구는 술자리에서 오히려 기묘한 훈장이 됐다. 덩치 큰 친구들이 하나둘 테이블 위로 쓰러질 때, 끝까지 등을 곧게 펴고 잔을 비우는 나 자신에게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남들 몰래 스페어 엔진이라도 하나 더 달고 태어난 사람처럼, 그 '술부심'을 연료 삼아 밤마다 술집 문을 덜컥 열어젖혔다.
맨 정신의 나는 사실 좀 깐깐하고 냉정한 타입이다. 하지만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면 세상의 채도가 마법처럼 바뀌었다. 모든 사람이 무해해 보였고, 나는 한없이 다정하고 유쾌해졌다. 술자리가 끝나면 휴대폰에는 낯선 번호들이 저장되었고, 나의 연애와 우정, 그 반짝이는 시작은 대부분 술과 함께였다. 술은 차가운 가면을 벗고 '다정한 나'를 꺼내 놓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무기였다.
그러다 예고 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작년 초 유방암 진단을 받으며 내 음주 생활은 갑자기 멈춰 섰다. 주변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성 호르몬과 관련된 암에 술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훗날 혹시라도 재발이나 전이가 되었을 때, 그 술잔을 들었던 나 자신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자부심이자 든든한 무기였던 술과 작별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술로 이어진 인연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와인 애호가 지인이 주최한 모임에서였다.
사람들의 잔에는 향기로운 붉은 와인이 빛났고, 내 잔에는 맛도 향도 없는 투명한 생수가 담겨 있었다. 붉은 와인 잔 너머로 웃고 떠드는 그들은 비비드 한 유채색의 세계에 있었고, 나만 흑백 필름 속에 격리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늘 유머와 활기로 자리를 이끌던 나는 어느새 구석의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문득 공포가 밀려왔다.
‘술이라는 무기가 없는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람인 걸까?’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술이 빠져나간 자리에 다른 즐거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녁의 수다 대신 책 속의 문장을 탐닉했고, 말하고 싶은 욕구는 퍼블릭 스피치 클럽에서 정제된 언어로 풀어냈다.
무엇보다 나를 구원한 것은 운동이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심장이 터질 듯 뛸 때 찾아오는 도파민은 술이 주던 그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묵직했다.
술친구들이 떠난 자리에는 '오운완 (오늘 운동 완료)'을 외치는 운동 친구들이 찾아왔다. 러닝머신 속도를 올리고, 어제보다 단 1kg이라도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는 순간의 희열. 그것은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내 몸과 의지로 일궈낸 진짜 자존감이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내게 술은 내 안의 뾰족함이 세상과 부딪히지 않도록 감춰주던 도피처였다는 것을. 취기라는 안개 뒤로 숨어 다정함을 연기하고, 몽롱한 쾌락 뒤로 불안을 밀어 넣어 두는 은밀한 창고였음을 말이다.
반면, 지금 내 손에 들린 덤벨은 도망치려는 나를 삶의 한가운데에 붙잡아 두는 가장 정직한 도전이다.
지금 내게 가장 큰 쾌감을 주는 것은 매일 아침, 백 퍼센트로 충전된 에너지로 상쾌하게 눈을 뜨는 일이다. 어제의 나를 후회하지 않고, 오늘의 나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알코올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단단히 세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암이라는 시련이 내게 남긴, 역설적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나는 이제 무기 없이도 충분히 다정하고, 술 없이도 기꺼이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