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부모님과 함께 한 미식의 추억

by 김단단

작년에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흑(黑)’과 ‘백(白)’으로 상징되는 요리계의 신예들과 중견 셰프들의 대결.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요리보다 더 화제가 된 건 심사위원 안성재의 말투였다. “~정도가 이븐하다”는 그의 평가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세밀한 평가 방식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내게 몸에 밴 습관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음식을 맛볼 때마다 음식의 종류나 가격에 상관없이 조리법, 익힘 정도, 양념과 재료의 균형을 자연스레 떠올리며 음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말투를 따라 하며 “이 음식의 익힘 정도가 말이야~” 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속으로는 ‘저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아마 이런 습관은 미식가였던 부모님에게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것도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분으로부터.


어머니는 음식을 무척 잘하셨다. 전라도 출신답게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셨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언니들의 결혼식 후에는 직접 이바지 음식까지 준비하실 정도였다.

보통의 이바지 음식은, 대추와 밤을 두르고 그 위에 닭과 장식을 얹는 전통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시부모에게 기선제압을 하고 싶으셨는지, 과감하게 자신만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셨다.


우선 식빵을 층층이 쌓아 쿠킹호일로 단단히 감싸고, 이쑤시개로 파슬리를 네 면에 빼곡히 꽂았다. 그 위에는 생화와 과일 조각을 촘촘히 꽂아 화려함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대추와 밤 타래를 두른 뒤 닭 한 마리를 올리자, 초록빛 산에 꽃이 만발하고 그 정상에 봉황이 앉아 있는 듯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완성된 어머니의 작품은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이바지 음식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음식에 늘 불만이셨다. 평안도 출신인 아버지의 입맛에는 전라도식 요리가 지나치게 화려하고 강렬했다. 양념은 세고, 재료마다 목소리를 내는 듯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뚜렷하다며 늘 불평을 하셨다. 어쩌면 아버지가 불편했던 건 음식의 맛이 아니라,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어머니의 강한 기세였는지도 모른다.


두 분은 성격과 성향도 정반대였지만, 음식 취향도 무척 달랐다.

아버지는 평양냉면을 제일 좋아하셨고, 메밀국수나 국밥 같은 소박한 음식을 즐기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끔 나를 데리고 휴전선 화이트교 근처의 냉면집까지 찾아가곤 하셨다. 실향민들이 운영하는 그 집에서 맛본 평양냉면은 지금까지도 내게 소울푸드로 남아 있다.

반면 어머니는 고급 일식과 양식을 좋아하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소공동의 이탈리안 식당이나 명동의 일식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명동은 나에게는 곧 청춘이야.” 라고 하셨다. 화려한 도심의 한복판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가장 세련된 음식을 즐기셨다.

두 분의 성향이 달랐던 만큼 함께 외식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쩌다 하는 가족 외식은 두 분의 음식에 대한 다툼으로 끝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두 분 모두 마음에 드는 집을 찾게 되면, 그 순간만은 서로에게 더없이 관대하고 다정해졌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이제는 부모님도, 그 맛집들도 사라졌지만, 그때의 미식 경험은 여전히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박물관이나 미술관, 음악회에 데려가지만, 나는 여기에 꼭 ‘미식의 기억’을 더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 미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장 소중한, 위대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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