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한 장면이 일깨워낸 나의 첫 번째 구조조정 이야기
“형, 내가 회사에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김 부장이 오열하며 백상무에게 소리친다.
25년 직장생활 동안 믿고 의지하던 선배로부터 좌천 통보를 받는 장면이었다.
김 부장의 손에는 백상무에게 전하려던 반찬통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 이적의 ‘혼자였다’가 흐른다.
드라마를 보며 내 안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분노와 배신감이, 마치 오래된 상처를 손끝으로 긁어내는 듯했다.
30년의 직장생활이 한 편의 영화처럼 되감기며 머릿속을 스쳐갔다.
내가 처음 경험한 구조조정은 잔인했다. IMF가 시작된 바로 다음 해의 일이었다.
회사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자, 누가 명단에 들지 모른다는 불안이 사무실 공기를 짓눌렀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는 천 명이 넘는 직원을 ‘개척영업팀’이라는 곳으로 발령을 냈다.
전화기 한 대, 책상 하나, 그리고 “이제부터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냉정한 메시지와 함께.
드라마 속 김 부장처럼, 그들도 처음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여기서 버티면 다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하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발령받은 사람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의 자리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내게 일을 가르쳐주던 과장님, 점심시간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선배 언니가 그 팀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도 회사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고, 팀이 사라지고, 이름이 달라졌지만 결국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됐다.
그리고 나도 그 사이에서 버티며, 어느새 김 부장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TV 속 김 부장의 눈물과 함께 그의 손에 들린 반찬통이 이상하게 오래 눈에 밟혔다.
그 안에는 반찬만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살아남고자 하는 안간힘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한동안 리모컨을 든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의 눈물이 화면 너머로 번져 내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건 단지 김 부장의 눈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삼켰던,
수많은 세월 동안 쌓여온 모든 직장인의 눈물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