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프로젝트 : 44]
[Archive 044] 1993, Designed by Honda. ⓒ Dong Jin Kim
김우중은 1992년 10월 26일 돌연 일본행을 택했다. 그가 일본으로 간 배경을 두고 언론에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대우자동차는 GM과의 결별을 선언한 이후 뚜렷한 후속 행보를 보여주고 있지 않았다. 이와중에 김우중의 대선 출마설이 불거지면서 재계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도 생겨났다. 대우차의 임직원들 역시 좌불안석이었다. 김우중이 만성적인 노사분규와 매년 1천여억에 이르는 적자에 시달리던 대우차를 일본 제조사나 마침 자동차 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삼성에 매각할 것이라는 찌라시가 사내에 돌았기 때문이다.
일련의 헤프닝은 그가 귀국한 이후로 차차 진정되었다. 그가 일본에 다녀온 이유는 바로 혼다와 '레전드'의 현지 생산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대우차는 80년대 후반부터 GM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 자동차 업체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원론적인 회사방침은 '독자개발을 통한 자력생존'이었지만 노후화와 단조로운 라인업을 쇄신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대우국민차를 통해 연이 닿은 스즈키는 협상 끝에 자본 참여가 무산되었고, 닛산은 삼성이 상용차 기술 제휴를 앞서 맺음으로서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 손길을 건넨 곳은 혼다였다. 김우중의 방일을 계기로 기술협약은 탄력이 붙었다. 이윽고 대우차는 1994년 아카디아를 출시하여 임페리얼을 재빨리 대체했다. 임페리얼은 각그랜저와의 대형차 판매 경쟁에서 밀려 월 10여대 남짓의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어왔다.
다음 타자는 중형차였다. 대우차는 1993년 11월 경 부터 어코드의 국내 생산을 검토했다. 놀라운 부분은 혼다가 먼저 어코드의 생산을 제의했다는 점이다. 북미에 출시된지 불과 반년도 안 된 CD형 어코드를 선뜻 넘겨주겠다는 혼다의 속셈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1987년 부터 대림혼다를 통해 북미산 어코드를 판매해왔으나 연간 십수여대에 불과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던 국내 상황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1994년 2월 1일, 김우중 회장은 부평공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코드의 생산을 공식화했다. 물망에 오른 것은 2.0리터와 2.2리터 4기통 F20B / F22A3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북미형 모델이었다. 앞선 대림혼다 수입분과 동일한 모델로 마침 지난해 말 부터 수입이 중단된 참이었다. 생산설비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대우차는 판매 첫 해에 2천 대의 어코드를 수입해 판매하고, 이듬해부터 현지생산 체제로 전환하고자 했다.
하지만 대우차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제동이 걸렸다. 바로 정부에서 어코드의 기술도입신고서를 사실상 불허한 것이다. 그간 상공자원부는 외국 모델을 그대로 도입해 생산하는 이른바 '해외도입모델'의 허가에 날을 세우고 있었고, 대우차가 신고서를 제출한 1994년 중반 경에는 이를 전면 불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당초 대우차는 어코드의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려 생산할 계획이었다. 시장성 문제에도 발목이 잡혔다. 대우차는 기존에 혼다와 맺은 8년간의 아카디아 생산 계약에 어코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존 계약에 명시된 높은 로열티는 가격 경쟁력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고부가가치의 대형차 시장에서는 비교적 여유로웠던 로열티 문제를 간과해 발생한 실책이었다.
결국 대우차는 1994년 9월 경 어코드의 출시를 백지화했다. 상처만 남은 대우차는 부랴부랴 새 중형차를 독자모델로 개발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프로젝트 V-100, 레간자다. 어찌보면 어코드의 출시 무산이 기술자립의 시기를 앞당기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반면 어코드를 출시하고 자연스럽게 단종 수순에 접어들 예정이었던 프린스는 노후화에도 불구하고 기대치 않은 준수한 판매고를 올리면서 어코드의 공백을 메웠다.
반면 혼다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어코드를 계기로 대우차와 관계가 틀어진 혼다는 자력으로 한국 진출을 검토했으나 IMF 사태가 터지며 생각을 접었다. 대림혼다의 철수로 정식 판매가 중단된 어코드는 그레이 임포터를 통해 꾸준히 비공식적으로 판매가 이어졌다. 이윽고 2003년 심기일전한 혼다가 '혼다코리아'를 출범하면서 2004년 부터 꾸준히 어코드를 비롯한 차량들을 판매해오고 있다. 대우 로고를 단 혼다차가 팔린 평행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막연하게 그려본다.
현재 소재: 테스트 여부 불명
조선일보 ''방일 배경 뭘까' 정치적 추측 난무' 1992.10.27
매일경제 '대우 자동차재구축 나섰다' 1992.09.28
경향신문 '승용차 내수판매"격전"예상' 1993.01.04
조선일보 '자동차 혼다풍 기술중시 경영의"승리"' 1993.05.17
한겨레 '혼다차 본격진출 움직임 대우에 생산·판매 제의' 1993.11.10
동아일보 '일 혼다, 대우차에 '어코드' 생산 제의' 1993.11.10
매일경제 '인터뷰 부평공장 상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1994.02.02
매일경제 '대우차, 일 혼다와 전면제휴' 1994.03.08
경향신문 '자동차 해외모델 도입 불허' 1994.07.09
매일경제 '대우차 어코드기술도입 일 혼다, 10월 결정키로' 1994.08.19
매일경제 '선호도 변화 반영 중형 중점 공략' 1994.08.25
매일경제 '대우차, 혼다 기술제휴 청산' 1997.01.06
교통신문 '혼다코리아 출범은 올해 판매는 내년, 차종 선택도 미뤄' 200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