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인연을 말하다. (구, 비와 바람의 소나티네)
그 날의 인연을 말하다.
4. 파비안, 란의 첫인상
새벽녘부터 내리기 시작한 이슬이 눈꺼풀 끝으로 모여들었고 나처럼 모로 누운 콧등으로 이슬방울이 눈물처럼 흘렀다. 그렇게 신선한 공기가 조금씩 머리카락을 무겁게 하고 있었지만 찌뿌둥한 몸은 더 깊숙이 침낭 속을 파고들었다. 주변이 아직 어둠 속이라는 것쯤은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침낭 속에서 꼬물거리던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번거로움도 잊고 순식간에 두 눈꺼풀을 들어 올린 사람은 어제 그 동양인 여자였다. 이제야 달빛도 산 끝에 올라섰는데 그 적막한 어둠을 무식하게 그녀가 깨버렸다. 까치발을 하고 아무리 사뿐사뿐 걷는다지만, 낡을 대로 낡은 나무문이 침묵할 리가 없었다. 꽤나 뚱뚱한 배낭을 메고 한겨울에나 신을 법한 묵직한 등산화를 신은 그녀도 어쨌든 나처럼 순례자인 모양이다. 그 차림은 그녀가 생전 산이라고 타 본 적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침낭 안에 뒹굴던 귀마개를 찾아 꼽고 배낭 안으로 머리까지 밀어 넣었다. 조금 더 오래 따뜻한 침낭 안에 머물고 싶었다.
얼마나 더 잤는지 모르겠다. 귀마개 덕분에 짧은 시간 깊은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모두 체크아웃했고 메이드는 이미 청소를 시작했다. 대충 씻고 짐을 챙겨 출발했다. 카페에 들려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크루아상 하나로 여유 가득한 아침을 시작했다. 슬쩍슬쩍 불어오는 해풍이 곧 후덥지근해질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스페인의 태양은 9월에도 그 힘이 대단하다. 햇살이 살을 뚫고 뼛속까지 찌르는 더위다. 그래도 괜찮다. 앞뒤로 복작복작하게 사람들과 뒤섞여 걷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낫다. 프랑스 길에서 한 달 넘게 수많은 사람과 부딪혔더니 오롯이 혼자인 이 시간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일부러 느지막이 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지독하게 뜨거워지는 태양을 피해 12시쯤부터 3시까지는 걷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그들은 새벽부터 출발해 늦어도 2시 안에는 다음 목적지에 도착해 짐을 푸는 것이다. 나는 그런 다른 사람들이 조금은 미련해 보였다. 고작 몇 시간의 강렬한 볕이 싫다고 일찍 도착하면 아무것도 없는 숙소에서 온종일 뭐하며 시간을 보낸단 말인가. 여기까지 와서 왜 그들은 일상에서처럼 자신을 볶아대는 것일까. 바쁜 일상과 다를 것 없는 하루로 왜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일까. 무엇하러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땀 흘리며 걷는 것일까. 그냥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뒷산에 오르거나 동네 한 바퀴 산책이나 하면 될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방식을 존중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덕에 내가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즐길 수도 있으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지나다 맘에 드는 마을이 있으면 공소(시골의 작은 성당)를 찾아 처마 밑에 짐을 풀고 그 마을에 머물기도 했다. 북쪽 길의 특성상, 스페인의 북쪽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라 자주 바다를 만났다. 그럴 때면 가끔은 바다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가끔 첫날 숙소에서 본 그 아시아 여자를 마주쳤지만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누군가를 살펴보고 알아볼 만큼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항상 죽을상을 한 얼굴은 멀리서도 확실하게 보였다. 주변 사람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 눈에도 그녀는 늘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 북쪽 길에는 프랑스 길보다 사람이 적지만 늦은 휴가를 떠나온 스페인 사람과 유럽인들이 많았다. 그 속에 뒤섞여 휴가 온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 길을 이미 수백 킬로 걸었던 터라 오르막도 내리막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며칠째 여유 속에 천천히 걷고 있는데 저 멀리 그 아시아 여자가 걸어가고 있다. 발이 아파서 그런 건지 원래 그렇게 걷는 것인지 절뚝이며 믿기 어려울 만큼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잡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점처럼 보였던 그녀였는데 순식간에 나란히 걷고 있었다.
“안녕, 부엔 카미노”
“어? 어.. 어! 안녕. 너도.”
“그런데, 덥지 않아? 벌써 12시가 넘었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그 긴팔 재킷......, 괜찮아?”
“그러네. 진짜 덥네. 불 속에 이글이글 익어 가는 스테이크가 된 기분이야.”
“뭐라고? 그렇다면 재킷을 벗어!”
“아니야. 뜨거운 직사광선을 맞아 온몸이 따가운 것도 너무 싫고, 무엇보다 살이 타서 살갗이 벗겨지고 시커멓게 되는 건 더 싫어.”
“음....”
첫인상도 그랬지만 처음 대화를 한 지금도 그녀는 참 이상하다. 자신이 불 위에서 이글이글 익어 가는 스테이크 같다고 비유한 것도 재밌지만, 그럼에도 결코 재킷을 벗지 않는 그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살이 좀 타면 어때서? 조금 시커멓게 그을리면 어때서? 볕이 적은 독일에서는 하얀 피부를 다들 태우지 못해서 난리인데. 독일인들은 외려 하얀 피부가 인생을 즐길 줄 모르며 방 또는 사무실에 종일 박혀서 공부나 일만 하는 사람으로 보여 기피하는데. 간혹 몇몇 동양인은 모자나 토시 또는 팔이 긴 티셔츠와 스카프로 중무장하고 유독 햇볕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그 동양인 여자도 아마 한국인일 것이다. 2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여러 나라와 많은 사람을 만났어도 한국인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나에겐 의아한 부분으로 남았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먼저 가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그녀가 걸음을 서둘렀다. 내내 기어가듯 걷던 그녀는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갔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정말 이상해 보였다.
일주일 넘게 나는 마을마다 작은 공소 처마 밑에서 잠을 청했다. 여러 명이 한방에 모여 밤마다 연주해대는 코골이 합주는 내 숙면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당 아래 몸을 뉘이고 밤을 새우는 일이 나쁘지도 않았다. 초저녁이나 밤, 그리고 새벽녘과 동이 틀 무렵, 시시각각 변하는 공기는 지역마다 달랐고 신선했다. 초반에 만났던 루카라는 아이는 이런 내 숙박 스타일을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이내 나처럼 비박을 즐기고 있었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내게 좋은 방법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루는 해변에서 사부작사부작 내려앉는 별빛과 보냈고 어떤 날은 농장 옆의 마른 짚더미에서 암소들과 밤을 지샌 이야기를 했다. 열아홉에 아빠가 되고 가장이 된 그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자유였고 그 시간에 그는 깊이 젖어 있었다. 초반에 그의 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근심도 사라져 있었다. 문득 그 아시아인 여자의 피곤한 얼굴이 스쳤고 사라졌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녀도 루카처럼 지금은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시작한 지 열흘째인가, 아니 그보다 이틀이 더 지났던가, 지난밤부터 지독한 두통으로 시작해서 오한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 겨우 출발했지만, 여전히 몸은 무거웠고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는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벌들이 귓가를 맴돌다가 이따금 왼쪽이나 오른쪽을 쏘는 듯 몹시 괴로운 날이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프랑스인 아저씨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가 듣거나 말거나 연신 질문을 해댔고 내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유쾌한 수다를 떨었다. 중요한 것은 대게의 프랑스인들이 그렇듯, 그들은 내내 프랑스어로 떠들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불어였고 불어 선생님인 누나의 영향으로 불어를 꽤 공부했던 나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조잘거림은 소음에 가까웠다. 특히 오늘처럼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더 그랬다.
그들보다 빨리 걷기에는 몸이 너무 아팠고 그들보다 천천히 걸으려면 그들은 내 속도에 맞추어 주었다. 고맙지만 반갑지 않은 호의였다. 그렇게 그들과 발맞추어 선착장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며칠 전 마주친 스테이크가 있었다. 아니, 자신이 스테이크 같다던 여자가 있었다. 배를 타지 않고 굳이 걸어가겠다는 그녀가 답답하여 어지간하면 배를 타고 갈 것을 권했다. 그녀도 못 이긴 척 배를 타기로 했다. 함께 배를 기다리는 동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런 침묵은 익숙하지만, 나를 보는 건지 보면서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시선은 조금 불편하여 먼저 말을 걸었다.
“너 한국 사람이지?”
한국인이냐고 묻자 그녀는 당황해했다. 그녀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자, 그녀는 곧 자신의 영어 이름을 알려주려고 했다. 부모님이 주신 자신의 이름이 있고, 지금껏 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을 텐데, 다른 사람의 편의를 위해 쉬운 이름을 만들 필요 없다고 했다. 어려운 이름이라도 정확하게 발음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살아온 그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그 나라 언어에 대한 존중이다. 이런 내 생각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내 발음을 끝까지 교정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나지만, 단 한 번을 불러도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해 주고 싶었다. 누가 내 이름을 바비안이라고 부른다고 기분이야 나쁘지는 않겠지만, 파비안이라고 정확하게 불러주면 분명히 더 좋기 때문이다. 콩헤이롼이나, 공헤이라가 아니라, 공.혜.란.이라고 정확하게.
배가 선착장에 닿자마자 시끄럽던 프랑스인 아저씨들도 그녀도 모두 자신의 계획이나 속도대로 흩어졌다. 모두 사라지도록 나는 더 걸을 것인지, 이 도시에 머무를지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매우 이른 시간 알베르게(유스 호스텔 같은 순례자 전용 숙소)로 향했다. 이 도시를 벗어나면 다음 마을까지는 40km 남짓 걸어야 하고 그 구간에는 작은 마을들 뿐이라 숙소가 없었다. 오늘은 제대로 된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었다. 알베르게 앞에 다다르니, 그녀의 배낭이 숙소 입구에 줄 맞춰 서 있었다. 그 사이에 관리인이 왔고 먼저 숙소에 짐을 풀었다.
따뜻한 것을 찾아 들어간 작은 바에서 이안을 만났다. 벌써 6번째 카미노를 걷는 그와는 이야기가 잘 통했고 그의 인생 이야기와 떠도는 집시의 삶은 매우 흥미로웠다. 기꺼이 그와 합석을 하여 점심을 먹고 숙소로 앞에서도 꽤 오랜 시간 대화가 오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배낭만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좋아졌다.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거리를 사러 나섰다가 그녀를 마주쳤다. 이미 양손 가득 찬거리가 들려있었다. 도와주겠다는 것도 마다하여 그냥 돌아서려는데 그녀가 다시 불렀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말했다.
“저기....., 혼자 먹기엔 좀 많은데 같이 먹을래?”
오래 망설이다 꺼낸 말 치고 기운 빠지는 말이었지만, 흔쾌히 함께하자 했고 입구에 있던 이안까지 초대해 함께 식사했다. 그녀는 쌀을 조리해 참치와 야채를 넣고 빨간 소스와 함께 비벼주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카레가루와 비볐다. 정체불명의 빨간 소스는 다소 매웠지만 먹을 만했다.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이안은 물을 1L나 들이켰다. 처음 보는 스타일이었지만, 두 가지다 제법 흥미로운 맛이었다.
만족스러운 저녁을 대접한 그녀에게 이안과 나는 포도주로 보답했다. 우리 셋은 숙소의 문이 닫힐 때까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며 연신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프랑스어를 고집하는 프랑스인들과 영어를 잘 못 하는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웠던 모양이다. 즐겁고 깊은 대화가 오가면서 그녀가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들기 전,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쭈뼛거리며 망설이는 눈치였다.
“음....”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해. 친절한 사람은 아니지만 까칠하지도 않아.”
“이상하게 들릴 거 같아서......”
“무슨 말인데?”
“부탁이 있어.”
“뭔데?”
“내일 하루만 나랑 같이 출발해 줄 수 없을까?”
“같이 출발하자고?”
“응. 오랜만에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래서......”
“그래. 좋아.”
“정말?”
“그런데, 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일찍 못 일어나. 넌 새벽같이 출발하잖아.”
“내일은 그럼 8시에 출발할게. 너한테 맞춰서.”
“8시도 너무 이른데.....”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을 일부러 피한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함께 출발하자고 하다니.
종일 함께 걷는 것도 아닌데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처음 대화했던 날, 자신을 스테이크에 비유한 그녀는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하면 그녀도 그저 평범한 사람일 거란 확신도 있었다. 흔쾌히 함께 출발하기로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출발 시각이 내게는 꼭두새벽이었다. 10시쯤 출발하자는 내 말에 사색이 된 그녀에게 내 시간에 무조건 맞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 9시 출발로 합의했다. 그리고 그녀가 일어났을 때도 여전히 내가 자고 있거든 주먹으로 얼굴을 날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놀란 눈치였지만 그렇지 않으면 계속 자고 있을 거란 내 말에 그러겠노라 하고 침대로 돌아갔다.
다음 날, 그녀는 정말로 내 얼굴을 주먹으로 쳐서 깨웠다. 자다가 별안간 별들이 눈앞에 보이며 아찔했다. 주먹으로 쳐서 날 깨워달라고 했어도 적당히 흔들어 깨울 줄 알았다. 아침부터 계획에도 없던 날벼락을 맞으며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