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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Dec 18. 2016

착한 이별

Prolog

한때 나에게 전부였던 너.

어린 시절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나 꼬박 10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너란 사람.

그때에 나에게는 전부였다.

사랑했던 연인보다,

살 비비며 지내는 가족보다,

너를 알기 전 수년을 함께 했던 다른 친구들보다도 항상 넌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철없던 내가 너를 떠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과 그것을 바라서도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때론 연인보다 더 뜨겁고 때론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우리의 십 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네가 고민하던 것과 끝내 나를 떠날 수밖에 없던 사연들이 내가 너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과 얼마나 또 다를까.

불꽃이 튀어 오르듯 순식간에 불붙은 인연이었지만 그래도 은근하게 꽤 오래 버티어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 착한 이별이란 없다.

그리고 그 이별은 가깝게 지내다 연이 끊어지는 그 모든 관계에서 있을 법한 그런 일이다.

평범하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그런 의미다.

그렇게 우린 이별했는데, 넌 끝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 너의 이기심은 여전히 너를 향하던 아슬한 온기까지 초라하게 식게 했다.

진심이란 탈을 쓴 너의 욕심은 이별이 준비되지 않은 그 누구의 마음을 잔인하게 짓눌렀다.


넌 강하니까.


아니다. 나는 강하지 않다.

내 십 년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내 모든 열정과 애정을 다했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가는데, 어떻게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안다. 나도 잘 안다.

당장에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갑갑한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것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일주일이 될지, 3개월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르지만, 분명 영속되지 않음을 잘 안다.

고통을 먹고 슬픔으로 숨을 고르며 얼마간을 버틸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비록 여전히 슬픈 기운이 남아도 다시 오늘을,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간들이 쉬운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너도 그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내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하다니.



 넌 이제 강하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잘 지낼 수 있길 바라는 너의 바람,

무너질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 덜고 싶은 너의 욕심,

정말 잘 지낼 것이라 믿고 싶은 네가 내게 걸고 싶은 최면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네가 몰랐을 리 없을 테니까.



네가 행복하길 빌어.



차리리 악을 쓰고 욕을 했다면 더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

식어버린 마음을 굳이 애정 어린  몇 마디로 구질구질하게 포장하지 않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원망, 슬픔, 섭섭함, 화남, 약간의 분노, 이런 단어들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그 복잡한 마음을 일부러 꾸밀 필요도 감출 필요도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 굴지 않아도 되었고 드러나는 대로 그냥 두는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처럼 예쁘지마는 않은 이별에 어울리지 않는 상투적인 인사니까.

서로 영원하자고 깍지 걸고 했던 약속이 지켜질 거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연이 끊어질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던 우리였는데.......

그냥 잘 지내라는 그 한마디도 화가 날 지경인데, 행복하길 바란다니.


시간이 지나면 분노도 슬픔도 점차 잊힌다.

사실, 그것들이 잊힌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 속에 희석되어 희미해지는 것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모든 감정이 희미해지면 결국에 남는 것은 추억만 빛바랜 사진처럼 간간히 떠오른다.

나쁜 감정을 만들어냈던 사건들은 다 잊히고 희미한 감정만 흑백으로 남게 되면 그때부터 추억할 수가 있다.

이것은 나쁜 기억을 추억이라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희미해진 기억을 추억하는 그때가 되면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바랄 수도 있다.

가끔씩 꿈에 나와 헤집어 놓고 사라져도 덤덤할 수 있다.

하지만, 어제 오늘 헤어진 그 누구에게 당장은 아니다. 


그러니 당신,  

부디 헤어지는 그 순간부터 애써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려고 애쓰지 마라.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그 모습이 오히려 마지막까지 남아 추억이 되지 않더라.

추억이 희미해져도 마지막 말이 외려 시간 속에 갇혀 메아리처럼 울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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