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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Dec 02. 2017

다섯 번째 날, 지겨운 그것.

시월 오일, 이천십칠 년.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지난 9월 독일은 내가 독일에서 보냈던 그 어떤 9월보다 가을다운 달이었다.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처럼 알록달록 낙엽이 지천으로 보였고 따스한 볕도 많이 들었던 몹시도 사랑스러운 가을이었다.

독일에서 벌써 여섯 번째 9월을 보냈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가을은 처음이었다.

한 편으로 사랑스러운 그 날씨는 약간의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왜 그런 기분 드는 날이 있지 않나.

운수 좋은 날의 소설처럼, 독일 답지 않게 왜 이렇게 날씨가 좋은가?

시월에 접어들면 바로 비가 내리고 회색 도시가 되려나 싶었다.


시월이 되었고 닷새가 지났다.

첫날부터 며칠은 간간히 볕이 들었지만, 간헐적으로 빗물이 떨어지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9월에 비해 극적으로 날씨가 나빠지진 않았지만 구름이 덮인 우중중한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내린 비가 오후가 돼서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제부터 2차 시술을 위한 주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커피를 줄여야 하는데 남편에게 부탁해서 커피를 한 잔 얻었다.

아침부터 남편이 풍기던 그의 커피 향이 너무 달콤해서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커피를 한 잔 손에 쥐고 창문 옆 책상에 앉았다.

물끄러미 창문을 보니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귀찮네. 오늘은 나가지 말까?'


이런 고민을 하느라, 반도 비우지 못한 커피가 벌써 식어버렸다.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 둔 채, 슬그머니 침대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비가 내리는 걸 보니 이제 겨울이 슬슬 시작되는 모양이다.

이불속에 폭 파묻혀 있는데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았다.

하루의 게으름 때문에 아이가 내게 오려다 못 오면 어쩌지?

하는 엉뚱한 걱정에 몸이 벌떡 일어나 졌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찬바람에 혹여 배가 차가워질까 수면양말로 배를 덧싸기도 했다.

몸이 차가워지면 좋지 않으니 더운 게 낫다 싶은 생각에 챙겨 입고 그 위에 판초를 입고 나섰다.

5분 정도 지나자 금방 열이 몸에 올라 엄청난 빗 속에서도 추운 줄 몰랐다.

그렇게 오늘도 9Km 정도 열심히 걸었다.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문을 외는데 갑자기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비가 많이 내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은 빗물이 내 눈물인지, 눈물이 저 하늘의 빗물인지 알 수 없는데도 그런 걱정은 쓸데없었다.

이런 궂은날 누가 여기까지 와서 걷는 단 말인가?

나처럼 이렇게 간절한 사람이나 꾸역꾸역 걷고 있지.


오늘 외운 기도문은 환희의 신비였는데, 하필이면 3단을 묵상하며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묵상을 해야 하는데, 낳았다는 그 말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묵주 알을 굴린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는데 오늘은 그 구절에서 터지고 만 것이다.


나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천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에게 오는 것은 시기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 아이와 나의 인연을.

독일에서 시험관은 보험사마다 다른데,

보통 만 40세 미만, 즉 39세 생일 전까지 보험사에서 50% 시험관 금액을 보험 처리해준다.

나머지 50%는 본인의 몫이다.

우리 보험사도 그랬다. 그래서 만 39세가 1년 반쯤 남았을 때 난임 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 부부는 100% 자임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였다.

시험관 미세 수정을 통하지 않고는 아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식의 인연은 천륜이라고 손 놓고 있었던 꼴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험관을 시작했다.


이식도 못해보고 허무하게 끝난 첫 번째 시술.

그 후로 지금까지 가끔은 나도 놀랄 정도로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그 두려움은 얼마 전 친한 동생네 집에 방문하고 였다.

두어 달 전에 아이를 낳아 겸사겸사 방문했는데, 이제 두 달 된 아이가 너무 예뻤다.

원래 내가 아기를 좋아하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아이를 안고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아기를 좋아하는지, 그런 내가 얼마나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원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쏜살같이 그런데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폭풍처럼 눈물이 몰아쳤다.

축하하러 간 자리에 눈물 바람으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눈물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후로, 나는 어떤 두려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이 난다.

기도하다 문득 울음이 터졌던 것도 그 이유였다.

이번 두 번째 시술이 내게는 희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과 바람으로 열심히 진행했던 게 아니었다.

기적이 없는 한 결과는 첫 번째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시도를 해 볼만큼 해보았고 그래도 내게 오지 않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어쩌면 내게는 아이와의 연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어쩌면 아이를 낳아보지도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희망과 바람이 아니라,

내게 아이의 인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두 번째 시술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었다.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 이제 알았는데,

알자마자 나는 그 바람을 놓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 것 같았다.

놓아야 하는데 놓아지지 않아서 서글펐던 것이다.

기적은 아무에게나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니까.

내 인생에서 기적 같은 운이 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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