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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Dec 02. 2017

네 번째 날, 묵주 기도 15일째

구월 삼십일, 이천십칠 년

요즘 나는 수시로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은 아무도 없을 때 혹은 기도할 때 주로 나타난다.

간혹 갓난아이를 안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다는 벅찬 마음과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기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터지는 설움에 눈물이  때도 있다.

다행히 그런 날은 많지 않고 그때마다 입술은 악물고 눈물을 넘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눈물이 의지로 삼켜지긴 한다.


문제는 얼마 전에 시작한 묵주 기도를 외면서도 간혹 서럽게 터질 때가 있다.

환희의 신비를 묵상할 때 마리아께서 잉태하신다는 부분이나

빛의 신비에서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할 때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울컥울컥 하고 풍선 터지듯 터져 나오는 지라

내가 입술에 힘주어 두 이를 꾹 마주 물고 말려 볼 틈이 없다.

처음에는 두 번째 시험관을 앞두고 부담과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태어난 지 이제 두 달 지난 친한 동생의 아이,

싱글싱글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면서 였다.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나는 내 아이를 단 한 번도 품에 안을 수 조차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나는 두 번째 시험관이 잘 되면 좋겠다는 설렘이나 희망,

두 번째도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두 번째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역시나 안될 거라는 단정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나 원하니까,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니까,

그래서 내 아이도 원하니까,

한 번만 해보고 포기하면 분명 후회할 거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두 번째 시술을 진행하고는 있어도

마음은 이미 그런 결과일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현실과 내 바람 사이에서 쉽게 포기가 되지 않기에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보다 두 배로 다가 올 두 번째 절망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는 슬픈 고민이었던 것이다.


난임이 아니라 어쩌면 불임,

나는 어쩌면 천천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슬픈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좋아하고 원하지만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을 바라는 그런 설움이었다.

내 눈물은 그랬다.




어릴 때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정월 대보름에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그땐 매년 정월 대보름엔 둥근달을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런 이유에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었을까?

미신으로 떠도는 이야기였지만 매년 정월 대보름에 하늘에 떠 있는 둥근달을 보며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당시 할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그것이 십계명에 반하는 것인지,

토속 신앙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빌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닌데, 이루어진다는 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당시 내 소원은 매우 단순하고 십 년이나 한결같았다.

전교 1등을 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무엇을 갖고 싶다는 것도,

풋사랑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매년 달을 보고 예뻐지게 해달라고만 빌었다.

어릴 때 어딜 가나 늘 예쁘다는 소릴 듣던 동생이 부러워서

누군가에게 나도 예쁘다는 소릴 들어보고 싶었던 시답잖은 이유였다.

나중에는 예뻐지는 것보다 곱게 나이 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당시 어린 내게는 어쨌든 무척 간절했던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더는 그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 이후로 무언가가 간절하여 수없이 기도를 하긴 했어도

달을 보며 십 년을 바랐던 만큼 간절한 적은 없었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비록 지금은 몇 가지 이유로 냉담 중이지만,

가끔씩 기도를 하고 여행을 다닐 때마다 꼭 그 지역 성당에 방문을 한다.

성당에 방문할 때마다 초를 봉헌하고 기도하며

때때로 가톨릭 성지를 방문하기도 한다.

십 년을 교회를 다녔지만 항상 존재했던 의구심과 거부감에 다시 십 년을 무교로 지냈다.

가끔 절에 방문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2009년 멋모르고 떠났던 스페인의 도보 성지 순례인 카미노 이후에 가톨릭 신자가 되어 독일에 오기 전까지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실했다.

가톨릭 신자가 되어서 묵주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수없이 54일 묵주 기도를 시도했지만,

100일이나 되는 것도 아닌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마친 적이 없었다.

신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내 바람이 간절하지 않은 적도 없었다.

묵주 기도는 내게 그저 참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54일 기도를 시작했다.



매일 한 시간씩 걷는 것이 난소에 좋다는 말에 매일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묵주를 다시 손에 쥐었는데,

그것은 내가 얼마나 아이를 원하는지를 자각케 했다.

지독한 간절함이 매일 걷고 매일 기도를 시키고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미 슬픈 상태지만 그래도 혹시나 신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내 기도를 들었으면, 하는 내 마지막이자 최후의 었다.

의학의 힘으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니 그저 기도라도 한 번 더하는 수밖에 없었다.


20년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간절한 것이 생겼다.

그것을 자각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와 내 간절한 바람 사이에 간극이 얼마 큼인지 깨달았다.   

끝도 없는 절망, 두려움, 공포가 존재하는 혼돈의 세계,

그 속에서 십 년 동안 달을 보며 빌었던 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간절한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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