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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Dec 02. 2017

세 번째 날, 내게로 오는 길

구월 이십이일, 이천십칠 년 - 난임과 불임의 사이 어디쯤.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머리 위 창문 너머로 민들레 홀씨 하나가 날아들더니 나풀나풀 흔들리다 바닥에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창문 틈 너머로 바람이 살살 불어 들 때마다 그 여린 홀씨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도 화장실 카펫 사이에 붙어있었다. 그 기특한 모습에 나는 또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다.


민들레 홀씨도 바람 불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3층이나 되는 우리 집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데 우리 아이 씨는 어디서 길을 헤매고 있느라 내게 한 번 와주질 않는 걸까?


하나의 홀씨가 땅이 아닌 화장실 카펫 위에 자리 잡아 싹을 틔우지 못한 것처럼 우리 아이도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걸까?


나도 언젠가 엄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한 없이 부족하기만 내 품에 우리의 아이를 안아볼 날이 오기는 할까?


겨우 민들레 홀씨 하나 때문에 나는 또 아침부터 펑펑 쏟아내고 만다.



한 여름인데도 요즘 며칠 하늘을 덮은 회색 빛이 독일에선 낯설지 않다.

변덕 부리는 독일 날씨에 익숙해진 것인지 날씨를 느낄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고 지났다.

그 날은 아침일찍부터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밤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와 한쪽 구석에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그렇게 멍하니 떨어지는 내 시선 끝에서 따뜻한 공기 냄새가 났다.

커튼 사이로 떨어지는 아침 공기가 참 따뜻해서 또 왈칵 쏟아졌다.

요즘 내가 그렇다. 언제나 울 준비를 하고 대기 중이다.

나를 덮고 있는 이 먹구름 사이로 내게도 볕이 들긴 할까?

그즈음 나는 세상에 크고 작은 모든 희로애락을 오직 슬픔과 절망으로 연결 짓는 몹쓸 습관이 생기고 말았다.  



뇌 구석구석의 빈 틈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다. 아이. 우리의 아이.

꾸역꾸역 꽉 차 있는 그 생각들에서 도저히 벗어 날 수가 없다. 벗어나고 싶어 조금 웃어보지만 그것이 전부다. 절망에 손이 묶이고 슬픔은 내 발목을 꽉 잡고 있으며 두려움은 끝까지 차올라 숨이 턱턱 막힌다.

이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간은 또 지독히 느리게 흘러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천천히.


좋은 생각 해보겠다고 1초마다 마음을 다잡아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치고 올라오는 두려움과 우울함은 그 어떤 말로도 단어로도 담을 길이 없다.

그것은 마치 매 순간, 매 초마다 슬픔이 뭍은 먼지 한 조각까지 끌어 모으고 두려움이 가진 그림자의 나노 픽셀까지 모두 빠짐없이 머리로, 가슴으로 꾹꾹 눌러 새기는 것처럼.

마치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취 없이 해부당한다면 이런 비슷한 기분 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몽땅 담긴 어떤 묵직한 봉지로 수많은 감정 세포들이 모두 하나씩 두들겨 맞고 있는 것 같이 노골적이었다.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로 시작했던 내 고민들은 이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에서 좋은 엄마가 될 거야의 결심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으며 결심이 된 순간 다시 수천번의 기도가 되고 그것들은 결국 눈물로 사라졌다. 잠이 들며 다시 좋은 생각만 하자 다짐하고 낡이 밝으면 또다시 반복한다.

언젠가 오기만 한다면 조금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기다릴 수 있겠다.

삼킬 수도 없는 지독한 이 고통의 시간들은 과연 지나갈 날이 올까.

나는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 두려움에 정신이 혼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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