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보틀마니아(Bottle-mania)가 되어버린 우리
국내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 생수는 연간 56억병에 달한다. 페트병의 둘레를 펼쳐 지구를 두르면 무려 14바퀴를 돌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국내외로 플라스틱 사용 억제를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이제는 문제의식에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생수 소비는 꺾일 줄을 모른다. 생수는 명백히 ‘일회용 플라스틱’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플라스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물을 사먹기 시작했을까? 88올림픽을 지나 바로 1994년부터, 한 세대에 불과한 단 30년 만에 수돗물은 ’유일한 물‘에서 ‘먹으면 안되는 물’로 전락해버렸다. 이제는 마실 물은 고사하고 밥을 짓고 라면을 끓이는 물조차 생수를 사용하는 시대가 왔다.
이 지적에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인천 유충 사태 처럼 수돗물을 믿지 못하게 하는 사건들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그 우려 섞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논리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그러한 안전사고는 매일 모든 가정으로 공급되는 수돗물 양에 비하면 사례가 극히 적다. 어쩌다 한 번 터진 사고가 인식에 크게 남는다.
물론 그러한 사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적지않은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그 때문에 차량 이용을 재고하지는 않듯, 일상에 도사리는 숱한 위험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종 소비재와 편의시설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엔가 공백이 있다. 우리가 이미 수돗물에 지출하고 있는 세금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그 소수의 안전사고라도 없도록, 식수로 늘상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응당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돗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많지 않다. 왜일까? 우리에게는 ‘생수’라는 언뜻 완벽해보이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09년에 출간된 도서 <보틀마니아>는 이러한 생수의 진실에 대해 파헤친다. 네슬레를 비롯한 글로벌 생수 회사들은 세계 곳곳의 수원지를 찾아다니며 그야말로 ‘빨대 꽂듯’ 그곳의 물을 빨아들인다.
그 회사들이 수익 창출을 위해 실어가는 물의 양은 물론 자연적으로 채워지는 양을 훨씬 초과한다. 그로 인해 주변 지역주민들은 물 공급에 타격을 입거나, 느리게 무너지는 생태계의 변화를 목격한다. 책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 미국 지역에서는 이러한 회사들을 대상으로 각종 소송들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거대 기업이 꾸리는 변호인단을 지역주민들이 이겨내기는 어렵다.
지역 주민들이 이용해야할 물로 한 기업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 천연자원인 물을 이토록 상품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두번째 논리적 오류는 바로 이 곳에 있다.
거대 기업들이 이름을 걸고 ‘상품화한 물’은 더이상 공공재가 아니다. 공공재가 아닌 물은, 수돗물보다 훨씬 더 연약한 통제 하에 있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수들이 음용 기준에 부적합하다.
그러나 생수 회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수돗물을 물로 인식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 마당에 생수의 안전성 문제가 가시화될리 없다. 분명히 있는 사실이,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수돗물 사고가 1면을 장식하는 것과는 퍽 다른 모습이다.
기업들의 수질관리에 대한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요즘과 같은 여름날 편의점 밖에 놓인 생수병들은 고온의 날씨 속에 유해물질의 온상이 된다.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발암물질 수치가 높아진 연구 사례가 있지만 이 역시 그리 화제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물을 마시고 또 생수를 소비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와 누구로부터 우리의 손에 도착했는지 우리는 놀라울만큼 무관심하다.
나는 요즈음 단체에서 플라스틱 생수 대응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다. 문제에 무지하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손쉽게 생수 묶음을 집으로 배달받았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브리타를 이용했다.
그리고 캠페이너가 된 몇 달 전부터 ‘정말로’ 수돗물을 먹기 시작했다. 첫 모금에 조금은 의식되던 염소 냄새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고, 냄새가 있는 경우에도 하룻밤 떠놓으면 사라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집집마다 수도관의 상태도, 지역마다 수도체계도 다르니 모든 사람에게 수돗물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플라스틱 생수의 안전성과, 가장 중요한 플라스틱 쓰레기의 폐해를 떠올린다면 수돗물은 제법 괜찮은 대안이다. 페트병이 쌓인 태평양 바다와 플라스틱 조각으로 뒤덮힌 토양을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꼭 수돗물이 아니더라도 생수의 대안은, 많다.
혹 현재 생수를 구입하고 있다면 다른 대안을 택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나날이 쌓여가는 페트병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안전하고, 쉬운 대안이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