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람과 고기〉(2025)
'고기'라니?
동물 윤리와 채식에 여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시대라 그런지, 영화 제목의 '고기'를 보고 의문이 앞섰다. '사람', '고기' 두 가지를 나란히 병치했지만 이들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사람도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고깃덩어리이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에는 몸이 존재를 앞세워 아우성친다. 혼이 빠져나가는 대신 육신의 존재감이 더욱 또렷해진다. 고기의 속성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사람에 가까워진다는 건 무엇일까?
형준과 우식은 폐지를 줍고, 화진은 길에서 야채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고기를 먹는 건 꿈도 못 꾸던 세 노인이 우연히 만나서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생계형 범죄에서 출발한 이들의 고기 먹기 행각은 끝을 모르고 계속된다. 노인들은 인근지역 고깃집을 순회하며 매번 계산을 하지 않고 몰래 도주한다.
뱃속의 허기와 감정적 허기는 얼마나 집요하게 달라붙어있는가. 배가 고파서 시작한 무전취식인데 점점 가슴 뛰는 즐거운 놀이가 된다. 세 노인은 불판 앞에 마주 앉아 삶의 우여곡절들을 잠시나마 잊는 듯하다. 일시적이나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타인과 부대끼는 것이 과제였던 걸까. 이들은 고깃집에서 인생의 회한을 나누며 서서히 가까워진다. 단순히 배고파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기행의 즐거움도 만끽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사람'의 지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빈곤의 현실은 낭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형준은 수년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달동네로 달려간다. 친구는 텅 빈 방에서 곡기를 끊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형준에게 남은 돈을 건네며 자신의 장례를 부탁한다. 결국 먹지 못하면 유기체는 죽는다. 당연한 사실이라 무력하다. 이 투명한 물질성 앞에 우리의 신체는 고기와 다를 바 없게 내몰린다. 형준은 굶어 죽은 친구의 부탁대로 작게나마 장례식을 꾸려준다. 장례라는 '의식'이 있는 한 사람의 죽음은 고기의 도축과 다르다. 애도되는 죽음. 사람이 되는 기본 조건은 타인과의 연결이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기 먹는 장면도 하나의 '의식'처럼 이루어진다. 불판 앞에 익는 고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머리를 맞댄 세 노인. 이들은 도망치는 전략을 정해서 그대로 반복한다. 무전취식이 발각될까 봐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 씬들은 유쾌하고 신선하다. 보통 영화에서 고기에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한 이들이 무게를 잡거나 지적토론을 할 때에 따라다니는 장면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이 어색하게 앉아서 은밀하게 고기를 먹는 장면은 클리셰를 비껴가는 재미가 있다. 담배 피우는 씬은 대체로 화가 나있거나 고뇌할 때의 단골소재였다. 고깃집에서 몰래 도망 나갈 목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연출은 '담배씬'의 새로운 발견이다. 노인들이 신나게 도망가는 장면은 꼭 어린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고뭉치들 같다. 영화는 이렇게 절망과 해학 사이를 오고 간다.
항상 '사람'과 '고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때때로 '사람답게 산다'는 표현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추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우리는 서로를 고기처럼 등급 매기는 데에 익숙하다. 요구되는 삶의 과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가 기준이 된다. 거주 환경을 가리켜 상급지, 하급지라고 부르던 것은이제는 일상 어휘가 되었다. 조금만 검색해 보면 대학 서열, 명품백 서열, 자동차 브랜드 서열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서열표가 있다. 줄 세우기는 불쾌하면서도 인간의 기본 욕망 어딘가를 건드린다. '내가 어디쯤 있는가'. 결혼정보회사 등급표를 흐린 눈으로 째려보며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보다 더 노골적으로 고기취급을 당한다. 난민, 이주노동자, 분쟁지역의 주민, 홈리스 들은 살아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마침 오늘 어떤 기사를 보았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의 시민들이 사라예보 시민을 저격하는 인간사냥놀이를 실제로 벌였다는 것을 규명하는 수사가 최근 시작됐다. 이 살인은 관광의 형태로 이루어졌고 사냥대상의 나이나 성별에 따라 사냥요금이 달랐다고 한다.
'사람답게 산다'는게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너무 거대하고 무겁다. 그래서 나는 텍스트를 읽는다.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누적된 무수한 텍스트들은 이 질문에 대한 저마다의 답변이다. 〈사람과 고기〉도 나름대로 응답을 제시한다. 가슴 뛰는 즐거운 일을 찾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 비록 무전취식일지라도 말이다. 나만의 답을 찾고 나면 마침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은 다시 한번 질문하는 거다. 나를 자꾸만 고기로 취급하려는 기준들 앞에 멈춰서야한다. 서열표 안에 자꾸 구겨 넣어지는 우리에게 다양한 참조표가 필요하다. '내가 어디쯤 있는가?' 에 더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 이것이야말로 조금이나마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