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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니쉬 Mar 20. 2020

2020/03/20  금

무장은 때때로가 아닌 모든 순간에 (마가복음 11:12-26)

Lectio 하나님 나라 읽기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서 그 다음날에,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이 서계신 곳은 성전 안에서도 가장 변두리의 뜰이었는데, 거기엔 여러 상인들이 제사에 쓰일 비둘기, 양, 염소 등 각종 동물들을 팔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은 성전 안 상인들은 은화만 받기 때문에 환전소가 꾸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곳은 '음메', '구구구', 각종 동물들의 울음 소리와,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 등으로 아주 시끌벅적한 상황이었다. 


이전에 수련회에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기억으론, 그 당시 성전은 가장 바깥 쪽과 중간, 그리고 가장 안쪽, 이렇게 3공간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이방인은 가장 바깥쪽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고, 조금 더 안쪽의 중간 지대는 유대인 여성들까지 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가장 안쪽은 유대인 남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서 계시는 그곳은, 성전의 가장 바깥 공간, 그러니까 이방인이라면 거기까지만 들어갈 수 있고 그곳에서만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끄러운 그곳에서 기도할 수 있는 집중력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즉, 그 성전은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조차 없는 성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방인이 기도할 수 있는 뜰을 상인들에게 내어준 것은 바로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과 같은 종교 권위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마 이방인들은 1년에 몇번 오지도 않아 거의 모든 시간 비어있던 그 공간을, 놀리면 뭐하나 싶어 상인들에게 내어주었을 것이고, 자리값과 더불어 상인들의 수익을 나누어 가져갔을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상인들의 상과 의자를 엎으셨다! 시끌벅적한 그곳에 순간 정적이 찾아왔을 것이다. 모두가 예수님을 주목하였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는냐? 그런데 어찌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이냐!"


예수님은 그 시위로 이 성전은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전은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들어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곳은 철저한 차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없애버릴까 궁리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가진 종교 권력을 잃게 될까봐, 그 권력을 통해 쌓은 부를 잃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Meditatio 하나님 나라 묵상하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유대인만이 아닌, 남자들만이 아닌, 남녀노소 어떤 민족이든 상관 없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지적하신 그 종교사업을 부를 축적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을 없애고자 하였다. 어제 우연히 보게 된 유튜버 <영어의사 알렉스>의 영상 중 '인생의 목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상',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성공을 위한 마음가짐'의 내용이 떠오른다. 인생은 언제나 나를 좌절시키고 넘어뜨리려 하고,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선한 의도로 열심히 살아간다 해도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넘어뜨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정말 선한 의도뿐이지 않으셨을까? 그런데도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다. 예수님도 인생의 좌절,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경험하셨는데, (특히나 Already but not yet의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도 언제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너무나 순진하게도, 내가 선한 의도로 살아간다면 나를 굳이 미워하거나 시기할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때때로 운이 나쁘게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나 가능한 일 정도로 생각했었고, 그때만 미움받을 용기를 발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과 어제 본 영상에서는, 언제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오히려 시기와 질투를 받는 일이 default 상태라고까지 얘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때때로만 무장하는 것이 아닌 언제든 무장을 하고 있어야겠다. 세상의 시기와 질투, 공격, 회유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무장이란 바로 기도하는 것이겠다. 세상이 보기에 그럴듯한 조건들 (학력, 부, 명예, 권력)을 갖추는 건 결국 세상의 가치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에 대한 무장이 아니다. 참된 능력이 있으시고, 나를 지으시고, 내게 선한 목적을 갖고 계신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래서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무장이고, 이것은 기도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Contemplatio 하나님나라 살기


하나님 앞에 차별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때 언제든 세상의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 그에 맞서 나는 매일 기도로 무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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