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QT 나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니쉬 Mar 06. 2020

2020/03/05 목

마음의 가난함과 경제적 자유의 공존 (마가복음 8:1-10)

Lectio 하나님 나라 읽기


예수님이 데가볼리라는 이방지역에 계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사흘동안 잠도 변변찮은 곳에서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래서 자신의 긍휼한 마음을 제자들에게 공유하였다.


"사흘동안 나와 함께 있던 저들에게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구나. 밥을 먹지 못하고 저대로 집에 돌아가다간 가는 길에 쓰러질 지도 모르겠어. 더구나 저 중엔 먼 지역에서 온 자도 있을 텐데 말이다... "


하지만 제자들은 퉁명스레 대답한다.

"참.. 예수님! 이 빈들에서,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이 모든 사람을, 먹일 빵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얼마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겪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어찌 이런 반응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일단 이들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더 크게 느끼며 살았던 사람들이라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자꾸 까먹게 되었을 수도 있다. 유진 피터슨은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요즘의 크리스쳔들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축소시켜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었다. 우리와 반대로 제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신성을 축소해 생각했을 수도. 매일 그들과 대화하고, 자고, 하품하시고, 화장실에 가시는 그 분을 보면서 '저분이 인간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시지'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예수님을 성경책에서 이야기로 만나는 게 우리의 신앙생활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수님에 대해 괜한 편견(예수님 고향 사람들처럼 말이다)을 갖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서. 다만 문자로 만나다 보니 유진 피터슨의 지적대로 예수님의 인간되심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 점은 신앙생활하면서 계속 주의해야겠다. (평범한 인간의 일상을 다윗 이야기를 통해 묵상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도 얼른 마저 읽어봐야겠다!)


여튼 제자들의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예수님은 한사람 한사람을 향한 긍휼함을 거두지 않으셨다. 이날은 빵 7개와 물고기 몇마리로 남자만 4000명이 배불리 먹게되었다.




Meditatio 하나님 나라 묵상하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쫓아다니며 굶주린 무리를 긍휼히 여기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들이 세상적으로 봤을 때 긍휼함을 느낄만하기 때문에 긍휼하게 느끼신 걸까? 먹을 것 없이 굶주린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예수님께 긍휼함을 얻으려면 세상적으로 봤을 때도 명백히 긍휼을 느낄만한 처지여야 하는 걸까? 극도로 가난해져야 한다든지... 나는 그러한 삶은 힘들 것 같은데...


이에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3)


예수님의 연민은 우리의 상황이 '세상적으로' 가난한가, 열악한가에 달려있지 않구나. 예수님의 연민은 우리의 마음이 가난한 지에 달려있구나. 마음이 가난한 자라 함은 오늘 예수님을 쫒차다녔던 저 무리들처럼 예수님을 찾고, 따르고, 구하는 자들이다. 아마 저 무리들 중엔 (드물 순 있지만) 세상적으로 봤을 땐 긍휼해보이지 않는 자들, 이를 테면, 부자나 지역 권위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도 예외없이 저 무리 가운데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는?

나는 예수님의 긍휼을 입으려면 세상적으로 가난해져야 하는 지에 대해, 사실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다행히 예수님이 그게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물질적 가난에 연연했을까?


사실, 이 QT를 하기 전, 브라우저에 열려있던 <파이낸셜 프리덤> 책 소개 페이지의 저자 인터뷰 영상을 보게되었다. 이 사람은 20대때 경제적 자유를 얻은 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일 - 글쓰기, 팟캐스트 운영하기, 강연하기 등 - 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단시간에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행복은 소비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점을 말했다. 그가 자신을 돌아보니, 자신은 반려견과 산책할 때, 친구들과 기타 칠 때, 책 읽을 때, 글을 쓸 때 행복하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들은 돈이 안드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또 투자도 많이 했지만, 소비를 많이 줄이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들에 집중하여 돈을 모았다고 하였다.


그의 메세지, 사실 행복하게 사는 데엔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넘어 그가 경제적 자유를 이룬 뒤 누구에게도 고용되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고 있는 삶에 좀 더 집중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있는 삶이 버거웠던 나는 그 삶이 너무나 부러웠다. 어쩌면 그 영상을 보는 짧은 시간에 내 무의식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정말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오늘 묵상 중에,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따지듯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무의식의 생각을 문장으로 꺼내보니, 참 나는 바보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내가 진정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었다니.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이 있다 할 지라도, 여전히 내 삶엔 불안과 허무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성경에 솔로몬이 그 대표적 예시이고, 지금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 예시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경제적 자유가 나쁘단 것은 아니다. 분명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지금 하고 있는 걱정 중에서 어느 정도는 혹은 많은 부분이 사라질 수 있다. 훨씬 더 마음이 여유로워질 수도 있겠고. 경제적 자유는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가 내 삶의 온전한 자유는 아니다.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온전한 자유는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온다는 것을.



Oratio 하나님 나라 구하기

주님, 당신 안에 거할 때 내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잠깐이지만 당신이 아닌 물질이 나를 온전히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을 돌이킵니다. 나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주님, 당신을 찾고 당신을 구하고 당신을 따랐던 저 무리들처럼 내가 그렇게 당신을 간절하게 사랑할 수 있기를, 내 마음에 언제나 당신을 향한 사랑이 있기를 구합니다.



Contemplatio 하나님 나라 살기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다.

온전한 자유는 하나님 안에 거할 때 누릴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03/04 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