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예상을 하고 대비책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제목만 보고 "어!? 이거 내 얘기 아냐? 갑자기 그 XX생각이 나네! 더러운 XX!"라고 생각을 했다면 잠깐 진정하자. 물론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헤어져놓고 스킨십을 하는 남자를 음식물쓰XX기로 규정하고 연락을 끊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나는 오늘 좀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 물론 내 글을 읽다 보면 "뭐야! 여자 보러 이것까지 이해하라고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난 참고 이해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 거다.
진지하게 만나던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3주쯤 있다가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그랬더니 언제 헤어졌냐는 듯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고 며칠 있다가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기로 했죠. 문제는 여기부터에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재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국은 서로 잘 맞지 않으니 다시 만나는 건 힘들겠다는 결론이 나왔죠. 그래서 저는 더 매달릴까 하다가 그냥 일어나려고 하는데 전 남자 친구가 갑자기 저를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하더라고요. 저는 깜짝 놀라서 뿌리치고 나왔는데 헤어지고 나서 정말 후회되더라고요... 싸대기라도 때려줬어야 했던 건데...
- 헤어진 남자 친구의 스킨십에 깜짝 놀란 H양
일단 결론부터 말을 하면 H양아 잘했다. 괜히 거기서 '스킨십을 하면 나를 다시 사랑해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면 그 끝은 정말 끔찍했을 거다. H양의 전 남자 친구가 H양을 정말로 사랑했다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만약 성욕이 앞섰다 한들 그러한 돌발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건 H양이 위와 같은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더라면 조금은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회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꼭 H양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바로님, 남자 친구가 술이나 한잔 하자는데... 나가도 되는 건가요?" 다른 사람이라면 "그건 다 성욕 때문에 그러는 거야! 절대 나가지마!"라고 말을 하겠지만 난 "ㅇㅋ! 찬스예요! 출동!"이라고 말을 한다.
술에 취하게 해서 취중진담을 이끌어 내다보면 마음이 맞다 잘될 거라는 동화 같은 얘길 하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의 알코올은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비만 한다면 오히려 기울어진 관계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취한 남자가 할 행동이야 뻔하지 않은가? 적당히 분위기 잡다가 스킨십을 시도하는 것, 이것 말고 또 뭘 하겠는가? H양이 전 남자 친구의 주량의 절반쯤 마셨을 때쯤 섹슈얼한 어필을 하다가 "요즘 엄마가 예민해서 빨리 들어가 봐야겠다 ㅠ_ㅠ"라며 시답잖은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아!"라며 차갑게 헤어지자던 남자 친구의 눈에서 한가득 아쉬움을 보게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 "저... 한잔만 더하자..."라며 H양을 붙잡을 수 도 있다. 일단은 이 정도에서 물러나는 거다. 위와 같은 상황을 두어 번 반복하다 보면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건 H양보다는 남자 친구가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H양의 대처는 매우 훌륭했다. 다만 차라리 그러한 대처를 할바에는 애초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며, 만약 마실 예정이었다면 앞서 내가 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예상을 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대비책을 강구했으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제게는 7년 정도 사귄 남자 친구가 있어요... 당연히 결혼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5년쯤 됐을 때부터 삐꺽이기 시작하더니... 6년째 되었을 때 헤어지기로 했어요. 하지만 오래 사귀다 보니 이것저것 엮인 게 많아서 한 번에 끊기가 어렵더라고요... 일단 서로 정리할 시간을 갖기고 했는데 딱 그때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어요. 남자 친구에게는 상황 설명을 다 하고 그렇게 1년쯤 만났는데... 며칠 전 이별통보를 받았어요... 자기가 마치 정부 같은 느낌이라고... 저는 그게 아닌데... 곧 완전히 정리한다고 말을 해도 남자 친구는 너무 완고하네요...
-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가해자가 되어있는 C양
어떤 사람들은 C양에게 손가락질을 할지 모르겠다만 난 C양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연애라는 게 1년은 사랑이지만 3년이 지나면 정이고 5년이 지나면 이건 뭐 가족이더라... 나도 5년 연애 끝에 이별을 결심한 적이 있는데, C양 말처럼 한 번에 무썰듯 딱 잘라지지가 않더라. 하지만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고 나서는 딱 잘랐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새로운 여자 친구를 보는 순간 전 여자 친구를 완벽히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도 아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나 전 여자 친구나 새 여자 친구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각색을 했기에 글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C양의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어쩔 수 없으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따위의 말 또는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자기합리화다.
C양의 욕심 때문에 전 남자 친구와 현 남자 친구가 겪어야 할 상처를 생각해보자. 남자 친구도 C양을 절대 안 본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무리라는 건 알지만 정말 현 남자 친구를 사랑한다면 전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서둘러 정리하자. 만약 사정상 어쩔 수 없다면 C양과 현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어쩔 수 없는 거다.
C양에게 꼭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건 꼭 말해주고 싶다. 관계라는 것에 있어서 이런저런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꼭 상처를 받게 되기 마련이다. C양은 남자 친구가 상처받길 원하나? 아니라면 현 남자 친구든 전 남자 친구든 서둘러 정리를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