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대단한 사람이라... 부담되고 자신이 없어져요...
Y양아 답장이 늦은 것 너무 미안하다. 사연이 워낙 많다 보니 나로서도 방법이 없다. 사실 지금도 다른 사연보다 훨씬 먼저 다루는 것인데, Y양의 사연을 통해 다른 사연들도 함께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일단은 "바로님 정말 마지막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그냥 ㄴㄴ, ㄱㄱ해주셔도 좋으니 꼭 답장 좀..."이란 Y양의 부탁에 대한 나의 대답은 "ㄱㄱ"다.
Y양은 먼저 연락하는 것도, 또 뭔가 매달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에도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내 지인 중에는 한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수백 번이고 도끼질을 하는 녀석이 있다. 한 번은 내가 한심하다는 식으로 "야, 답 없는 짓 좀 그만해, 자존심 상하지도 않냐?"라고 했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뭔 소리야,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데"
물론, 과도한 도끼질로 상대가 불편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건 안될 일이지만, 자존심의 문제라면 살짝 접어두어도 된다. Y양이 아무리 헛발질을 했든 그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Y양과 썸남뿐이지 않은가!? 아... 그리고 나도!
친구에게 소개를 받고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훈남이시더라고요... 외모도 엄청 잘생기셔서 대학교 홍보대사도 하시고 좋은 대학에 내년이면 대기업에 입사까지 앞두고 있는... 저는 주변에서 예쁘다고는 하지만 그분처럼 특출 난 외모도 아니고... 학벌도 그저 그렇고 회사도 중소기업... 처음 만났을 때 확실히 호감 표현을 해주셨지만 저는 괜히 비교되고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말도 더듬고... 철벽 치는 듯한 행동도 하고요...
군대를 전역하고 한창 술독에 빠져 있을 때, 친구 녀석이 "내 불 x친구야!"라면서 한 여자를 소개했다. 170이 넘어 보이는 키에 정말 찹쌀떡 같은 피부, 화장은 안 한 것 같은데 이쁜... 전형적인 남자들의 로망의 그녀였다. 처음에든 생각은 어떻게 소도둑놈 같이 생긴 내 친구에게 저런 불 x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였다. 그러다 나를 비롯한 술자리에 있던 녀석들은 "저런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며 정말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고 낄낄 거리며 신나게 소주를 간으로 퍼부었다.
그리고 다음날, 소도둑놈에게 연락이 왔다. "야, 희선이가 너 재미있다고 따로 만나보고 싶다는데 만나볼래?" 이건 정말이지 머리도 안 감고 장 보러 마트에 갔다가 이벤트에 당첨되어 BMW를 받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X 소리하고 있네, 이게 어디서 형님을 가지고 놀아!?"라고 문자를 보내며 그녀와의 첫 데이트를 위한 인터넷 쇼핑을 시작했다.
그 주말, 그녀 앞에서 정말 갖은 개인기를 하며 그녀를 즐겁게 해줬는데 그땐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대화중에 은연중에 그녀의 입에서 스며 나오는 '보스턴대학', '아버님이 교수', '취미가 발레' 등의 키워드들은 나를 더 멘붕 하게 했고, 반나절 동안 그녀를 웃겨주기만 하다 첫 데이트가 끝이 났다. 결론적으론 지속된 헛발질과 부담으로 연인관계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하다가 결국은 좋은 친구로 남기로 했는데... 요즘도 가끔 그날이 떠오르면 이불에 사커킥을 날리곤 한다.
그날 이후로도 아주 가끔씩 유사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물론 그때보다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진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생각의 변화 때문이다. 예전에는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게 호감을 보일 때 "이렇게 못난 날 좋아할 리가 없는데!?", "나를 다 알면 실망할 거야", "어차피 안될 것 같은데..." 등의 생각을 했었다면 요즘은 "못난 사람을 좋아하는 특이 취향인가?", "다 알고 나서 싫다고 하면 뭐... 그건 어쩔 수 없지... 현실인데.", "어차피 안될 거라면 뭐 긴장할 필요 있나?"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더더욱 외적으로 보이는 혹은 현실적인 여러 부분이 나보다 낫다면야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자꾸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고 하지는 말자. Y양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까 간절히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대시를 하면 온 우주가 도와줘서 훈남을 겟! 할 수 있다는 얘길 하는 게 아니다.
상대가 긍정적 피드백을 준다면 주저하지 말고 일단은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관계를 진행해가라는 거다. 결과까지 생각하지 마라. 그냥 바로 앞에 상대가 어떤 피드백을 주는지에만 집중해라. "이런 나에게 왜 호감을 보여주지?"라고 머리 뜯을 필요가 없는 거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ㅇㅋ?
그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분이 추천해준 영화를 다운로드하여서 보고 나서 이야길 건네었어요. 그렇게 좀 이야기를 하다가 좀 지나고 나니 할 얘기가 없다고 느껴질 때쯤... 대화가 끊기고... 그런 식으로 몇 차례 대화가 끊기니 불안해지더라고요...
Y양의 사연만 봐서는 왜 대화가 끊기는지 몰랐는데 Y양이 훈남과 주고받은 카톡을 확인해보니 이건 뭐... 당연히 대화가 끊길 수밖에 없는 방식의 대화가 아닌가!? 지금부터 Y양과 훈남의 카톡 대화를 통해 대화의 흐름을 끊어먹는 헛발질 대화 패턴을 점검해보자.
주제를 너무 자주 바꾸지 마라.
Y양 : 훈남이 추천해준 도쿄타워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훈남 : 그렇죠!? 저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Y양 : 훈남이 추천해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다운로드하여 보려고요!
Y양의 의도는 알겠다. "나! 네가 추천해준 영화에 공감하고 있고 네가 추천해준 거 다 볼 거당~" 뭐 이런 느낌인 건 아는데 욕심이 너무 과하다. 상대와 대화를 할 때 상대가 공감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최대한 디테일하게 파고드는 대화가 필요하다.
"나 도쿄타워를 봤다!"에서 끝낼게 아니라 도쿄타워 어느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왜 토오루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시후미는 진짜 토오루를 사랑한 걸까?, 영화 속 일본 거리가 너무 예뻤다. 등등의 감상과 질문을 주고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아! 저 사람과 통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하자.
일과를 보고하지 말고 뉘앙스를 전달해라.
Y양 : 아, 여기 비 온다.
훈남 : 우산은 챙겼어?
Y양 : 응 챙겼어
물론 대화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일과를 서로 주고받는 것도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는 방법이니!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건 우리가 왜! 상대와 연락을 주고받는지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Y양은 왜 훈남에게 연락을 하는가? 훈남에게 호감을 얻어내고 싶고 또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사단에 현황보고하는 당직 병사처럼 무미건조한 일과를 보고할게 아니라 "나는 너와 잘되고 싶어!"라는 뉘앙스를 전달해야 한다.
우산 챙겼냐는 훈남의 말에 현재 우산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보고를 할게 아니라 슬쩍 끼를 집어넣어 호감을 표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안 챙겼다고 하면... 우산 가지고 와줄 거야...!?"라던가, "챙겼지! 나 비 맞고 다니면 훈남이 슬퍼할 테니까!" 정도라면 귀엽고 괜찮지 않을까?
물론 지금 상황 자체가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대는 여러 여성팬을 거느린 훈남이고, Y양은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는 적당히 예쁜 소녀일 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피하지는 말자. 내 친구 녀석의 말처럼 Y양이 훈남에게 어떤 쪽?을 먹더라도 그걸 알고 있는 건 Y양과 훈남뿐이다. 여자가 말이야 유혹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으면! 끝까지 해봐야지! 안 그래!? Y양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