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를 자꾸만 의심하게 돼요...
사실 P양의 사연은 좀 불편한데... 1부터 10까지 모두 심증만을 가지고 남자 친구를 의심하고 추궁을 해놓고 아닌 것이 밝혀지니 "어떻게 사과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는 있으나 뉘앙스는 "그래도 남자 친구가 의심받을 행동을 했었고, 아직 모든 의혹이 해소된 건 아니다"라고 말을 하다니.. "정말 이별을 생각해봐야 할까요?"라는 P양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서로를 위해 이별도 때로는 답이 되기도 한다"이다.
저희는 사정상 비밀 연애 커플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번호도 다른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있고요. 한 번은 제가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더라고요...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저와 통화할 때보다 더 길게 통화를 하는 걸 보며 제가 누구냐고 캐물었는데 남자 친구는 지금 뭐하는거냐며 짜증을 냈고 그 날 이후부터 의심이 더 깊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 가 최근 자꾸 통화 중인 경우가 늘고 슬쩍 통화 목록을 보니 한 남자 이름이 많이 찍혀 있던데 혹시 다른 여자인가 싶더라고요. (저도 남자 친구 폰에는 남자 이름으로 저장되어있어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여자의 촉은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건 높은 정확도라는 것이지 100%는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촉이 온다고 해서 상대방을 의심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의심할만한 심증이 있다는 것도 서로의 신뢰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심증만으로 상대를 의심하는 것 또한 서로의 신뢰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네가 먼저 의심할만한 행동을 했으니 추궁할 거야!"라고 하기 전에 일단 스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P양의 경우라면, "누구랑 저렇게 연락을 하는 거야!? 여자!?"라고 의심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혹시 비밀연애를 하다 보니 내가 많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닐까?"라고 질문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남자끼리 무슨 연락을 그렇게 자주 하겠나 싶은 생각에 제 의심은 더욱 깊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참지 못하고 남자 친구에게 제 앞에서 그 사람과 통화를 해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남자 친구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런 식으로 추궁하고 의심하는 것 또한 서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거라며 진짜 이럴 거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별거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화낼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며 통화를 하라고 했어요. 근데... 정말 남자더라고요 남자 친구는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잠수를 탔어요.
많은 경우 P양처럼 "켕기는 거 없으면 확인시켜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더욱 상대를 압박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압박당하는 사람의 입장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정말 별일 아닌데 도끼눈을 뜨고 너 바람피우고 있는 거지!?라는 뉘앙스를 잔뜩 담아 "누구야!? 왜 지금 전화 오는데? 그렇게 친해?"라며 추궁을 당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물론 사귀는 사이니까 무조건 상대에게 절대 신뢰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의심하고 추궁하는 것은 상대에게 도리어 신뢰를 잃을 수도 있고 또한 역풍을 맞아 오히려 남자 친구를 의심하는 여자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지금 P양의 상황처럼 말이다.)
심증은 어디까지나 심증이다. 만약 남자 친구가 정말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해도. P양이 심증만으로 남자 친구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면 남자 친구는 더욱 주의를 할 것이고 결정적 증거를 찾기 어려워진다. 이뿐인가? P양이 헛발을 짚었을 때 그것을 두고두고 우려먹으며 P양이 어느 정도 증거를 확보한 합리적인 추궁과 의심도 의심병으로 몰고 가며 물타기를 해버릴 거다.
의심이 가더라도 일단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는 모른척하자. 물론 의심이 가는 상황에서 마냥 모르는척하며 웃으며 지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만약 포커페이스 유지가 어렵다면 차라리 대놓고 하소연을 해보자. "그 번호로 전화해봐. 남자랑 전화를 그렇게 많이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라며 추궁을 하지 말고 "난 오빠를 믿지만...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데 나 어떡하지...?"라고 말이다.
이렇게 추궁이 아닌 고민을 토로하듯 이야기를 하는데 "넌 왜 날 못 믿어!"라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사람은 없을 거다.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하니 말이다.) 남자 친구가 좋은 말로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알지... 나도 오빠가 날 두고 그럴 리가 없잖아... 알면서도 밤에 잠도 안 오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래..."라며 셀프디스를 하는듯하며 부드럽게 압박을 하자.
그날 이후 저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더라고요... 물론 이런 적이 두 번째고 이번에 확실히 아닌 게 드러났으니 더 화가 나는 건 이해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직 의심스러운 점들이 몇 가지 더 있다 보니 무작정 사과를 해도 받아줄까 싶고, 믿지도 못하겠고...
사실 나도 P양의 촉에 일견 공감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나였다면 결코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모르는 척 남자 친구에게 더 잘해주며 남자 친구가 방심하길 유도했을 거다. 그렇게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방심을 유도했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의심을 거둬드리면 될 일이고, 방심을 하여 결정적 증거를 흘렸을 때 아주 강력하고 단호한 태도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줬을 거다.
사실 이쯤 왔으면 이별의 수순을 밟는 게 맞다. 결정적 증거도 없이 촉으로만 의심을 하다가 결국 주도권을 남자 친구에게 모두 내어줘 버린 상황에서 P양에게 선택권은 없는 거다. 진짜 남자 친구가 켕기는 게 있든 없든 이번 사건으로 P양에게는 더 이상 남자 친구에게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타짜에서 고니가 아귀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이제와 후회해봐야 늦었다. P양은 너무 성급하게 승부를 내려고 했고, 진실이 어떠하든 P양은 승부에서 진 거다. 패자에게 허락된 건 언제나 겸허히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