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솔직히 말을 해라.
여자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남자친구가 센스가 없어서 대화하기가 힘들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하자면 "여자는 공감을 바라는데 남친은 자꾸 잔소리를 해요!"라든가 "저는 화가 나서 이야기를 하면 남자친구는 제 편을 들기보다 상대 편을 들어요!" 따위의 이야기를 한다. 일방적으로 여자의 얘기만 들어보면 남자들이 센스가 없는 게 아니라 매너 자체가 없는 것 같지만 남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 억울한 면이 있다.
결론이란 것은 대부분, 이쪽에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 이미 결정한 다음 멋대로 찾아오는 것 같다.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그런가, 좀처럼 잘 안 되네, 무라카미 하루키
며칠 전 음주의 욕구를 다스리며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친하게 지내는 여자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나 글쎄 오늘 부장이 나한테 옷 가지고 뭐라 하는 거 있지?" 그녀의 말은 이랬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회사에 갔는데 그 원피스가 조금 깊게 파이기도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 였는데 보수적인 부장이 그녀의 옷을 보고 한소리를 했다는 거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그래? 그럼 다음부터 그 원피스는 안 입고 나가면 되겠네."
당연히 그녀는 내가 무슨 옷을 입든 무슨 상관이냐며 오빠는 누구 편이냐며 남자는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왜일까...? 난 아무 잘못 없는데... 왜 전화를 받아줘서 욕을 얻어 먹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뭔지는 안다. "뭐야? 일만 잘하면 되지! 왜 옷차림 가지고 뭐라 해? 막 힐끔 본거 아냐? 완전 성희롱! 변태 xx 아냐!?"하지만 나의 말에 상대가 공감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좀 너무 자기 중심적인 생각 아닐까? 상대는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잖아?
남자친구에게 "센스 없어!", 혹은 "왜 내편이 아니야!?"라고 하기 전에 반대로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 "왜 남자는 센스가 있어야지?" 그리고 "남자친구는 꼭 내편이어야 하나?"하고 말이다. 당신과 남자친구의 생김새의 차이만큼 생각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당신과 남자친구가 생각이 다른 것은 센스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문제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나의 이야기에 토를 다는 남자와 평생을 서운해하면서 살아야 할까? 아니다. 이야기의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우리는 생각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상대와도 충분히 훈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동안은 결론을 정한 다음 다짜고짜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결론을 미리 말을 하고 이야기를 꺼내보자.
나는 이렇게 한다. 괜히 기분이 우울하고 답도 없는 얘기를 하고 싶을 때, 여자친구 혹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마치 러브 액추얼리에서 스케치북을 넘기는 마크처럼 이렇게 말한다.
자! 지금부터 나는 답도 없는 얘길 할 거야. 이 얘길 들으면 너는 "뭐 저런 거 가지고 그래!"할 수도 있고 "이 남자 이거 형편없구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는 나도 내 맘을 모를 정도로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그런 상황이야, 그러니까 그냥 내가 어떤 얘길 하면 그냥 오구오구 그랬어요? 혹은 다 잘될 거야! 이렇게 말을 해줘!
결과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나는 괜한 빈정상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고, 상대는 불필요하게 "어떤 말을 해줘야지?"하고 고민을 하거나 괜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 한소리 듣지 않고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공감이 필요하다면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다짜고짜 공감을 강요하지 마라. 차라리 처음부터 공감을 원한다고 당신이 바라는 대답이 이렇다고 말해주자.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도 당신이 바라는 대답을 알 수는 없겠지만 당신이 원하는 말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