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익숙하지 않아서일 뿐일지도...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이별 상담을 하다 보면 "응...? 정말 이렇게까지 아파?"하는 케이스들이 좀 있다. 예를 들면... 어플을 통해 한 달쯤 연락을 주고받다가 한 번도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별한 경우라던가...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보름도 안돼서 이별통보를 받은 경우 등이 그렇다.
이러한 경우 모태솔로이거나 그에 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사자들은 "숨도 못 쉬겠어요", "며칠째 밥도 못 먹고 있어요...",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어요"등등 아픔을 호소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해준다. "이별이 아픈 건 사랑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이건 아마 숙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길게 살다 보면 심한 말을 듣거나 심한 처사를 당하는 경험이 점점 쌓여가기 때문에 그냥 예사로운 일이 돼버린다. '이런 일로 일일이 상처받으면 어떻게 살려고'하며 툴툴 털어낼 수 있게 되고, 그 칼끝을 능숙하게 급소에서 치우는 요령을 익힌다.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낮잠의 달인, 무라카미 하루키
연애라는 것 때문에 눈물이 라는 걸 흘려본 건 고등학교 때가 처음이었다. 100여일 정도 사귀다가 이유 없이 뻥 차였는데 (재미있는 건 그녀와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지낸다.) 정말 그때는 죽는 줄 알았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두 조각으로 쩍 하고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데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이별이라는 정신적 충격이 심장을 반으로 쪼갤 수 있는 물리력을 발휘한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정도였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쪼개지는 기분,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너무 사랑해! 그녀 없이는 정말 살 수 없을 것 같아!"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랑을 했고, 또 이별을 했다. 물론 그때만큼 아팠던 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별의 아픔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루키의 말처럼 이별 중에는 '이런 일로 일일이 상처받으면 어떻게 살려고'라는 느낌으로 훌훌 털어버린 적도 있다. 그렇다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별에 조금 더 익숙해졌을 뿐이다.
5년의 연애를 종지부를 찍은 그날 (하필이면 내 생일이어다.) 그녀의 집 앞에 새로 생긴 이자까야에서 그녀를 붙들고 한 시간은 족히 눈물을 흘렸다. (아마 주인아저씨도 이런 손님은 처음이었을 거다.) 그리고 다음날, 퉁퉁부은 눈으로 그녀에게 카톡을 했다. "어제 너무 달렸다. 해장은 네가 쏴." 너무 당당한 나의 말에 그녀는 당황한 듯했지만 우린 헤어진 다음날 헤어진 상태로 함께 해장을 했고 그 날이후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고 치맥을 함께하기도 했지만 다시 사귀거나 하지는 않았다. (10월 17일에 결혼했다는데...)
개인적인 체험, 그리고 숱한 사례들을 보았을 때 사랑과 이별의 아픔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별의 아픔은 사랑이 아니라 이별에 익숙함에 반비례하는 건 아닐까?
처음 이별을 겪었을 땐 죽을 것 같다가도, 이별을 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면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든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 "나도 그녀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꼭 연인이 아니라도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좋겠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이별은 죽을병이 아니라 여행의 마지막 날 밤 같은 시원하면서 쓸쓸하고 아련한 뭐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런 나의 변화가 하루키가 말하는 '칼끝을 능숙하게 급소에서 치우는 요령'일까? 만약 당신이 지금 이별에 아파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너무 사랑해서 아픈 게 아니라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픈 거야!"라고 말이다.
뭔가 당신의 사랑을 폄하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건 당신의 사랑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이별 고통의 칼끝을 능숙하게 급소에서 치우는 요령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