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우리는 상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상대는 내 것?으로 만다는 데에 혈안이 되어간다. 머릿속엔 온통 "대체 왜 날 좋아하지 않는 거지!?", "날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따위의 생각을 하며 전의를 불태우곤 한다. 그런데 말이다... 좋아하는 상대를 꼭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연애경험은 다수 있는 편이었지만 누구를 이렇게 먼저 좋아해 본 경험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아는 언니의 소개로 소개팅을 했는데 정말 외모, 키, 능력 등등 모든 것이 저의 이상형 인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정말 너무 놀라고 첫 소개팅임에도 불구하고 5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고 에프터도 받아서 한번 더 만나서 춥다니까 손도 잡아주고 뭐 그랬는데... 그날 이후로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오빠 쪽에서 연락을 보내지 않더라고요... 이 오빠의 심리는 대체 무엇이며 저는 그냥 포기를 해야 하는 걸까요...?
- 이상형 소개팅남은 왜 날 좋아하지 않나요? K양
이런... K양이 영 좋지 못한 상황에 빠져버렸구나... 나는 좋은데...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라... 두 차례 K양의 연락에 답변을 하지 않는 일명 읽씹의 상황의 빠진 K양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K양의 말처럼 상대는 나름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음으로써 관계를 끝내려고 하는 것인데 K양의 마음은 그렇질 못하니 참...
K양도 이쯤에서 마음을 접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이상형인데...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상형인데... 어찌 쉽게 포기하고 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K양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건 사랑이랑 기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이기 이전에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시작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설령 상대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해도 일단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K양의 상황은 K양은 상대방을 좋아하지만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K양이 상대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할 상황인 거다. 말장난 같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상대방의 감정은 생각지도 않고 될 때까지 시도하다가 끝을 보고 포기를 한 것이라면 후자는 너무 좋아하고 더 표현해보고 싶지만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니 말이다.
나는 항상 K양과 비슷한 사연에 적극성을 권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의 감정을 존중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적극성이다. 단순히 연락이 줄어들었거나 미적지근한 분위기였다면 좀 달랐겠지만 상대가 답이 없다면 그건 "혹시?"의 상황이 아니라 아주 확실한 감정표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기사... 이런 얘길 듣자고 사연을 보낸 건 아닐 텐데... 그래도 정말 포기가 되질 않는다면 어쩌겠나 주선자에게 SOS를 청하는 수밖에... 주선자에게 소개팅남과 자연스러운 술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여기서 포인트는 1:1이 아니라 2:2나 3:3 정도가 적당한데 만약 성사가 된다면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K양의 매력을 보여주도록 하자.
물론 소개팅남에게 적극적으로 호감 표시를 하라는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술 지리 속에서 상대측? 전체에게 "내가 이렇게 매력 있는 여자예요!"라고 어필을 해보라는 거다. 만약 K양의 계획이 성공해서 소개팅남 주변의 지인들 입에서 "아까 K양 귀엽지 않냐?"라는 말이 나오기만 한다면... 이미 심정지 한 K양의 썸에 기적과 같은 응급처치가 되어줄 것이다.
지난 연휴를 맞아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단체관광 여행객들을 보았고 정말 말도 안 되게도 관광객들을 인솔하시는 가이드분에게 반해버렸네요. 저는 사진을 찍어달라고도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좀 바빠 보여서 돌아서야 했죠. 그렇게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데 도저히 포기가 안되더라고요. 그분의 이름도 몰랐지만 여행사 이름은 기억이 나서 여행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그 장소로 갔습니다.
역시나... 그분은 안 계시더라고요... 포기하며 근처 카페에 앉아 멍하니 있었는데 그분이 관광객들을 버스로 인솔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달려가서 그분께 명함을 드리고 꼭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했는데 벌써 3일째 연락이 없네요... 포기해야 하는 건 알지만... 도저히 포기가 안되네요... 지금 계획은 기다리거나 그분의 여행사를 찾아가 보는 것인데... 갑자기 찾아가는 건 실례겠죠...?
- 운명의 이상형을 발견했는데 연락 없어요... L군
L군에게도 K양과 비슷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L군이 상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느꼈다는 건 알겠지만... L군은 L군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건 아닐까? 상대가 L군만큼이나 관심이 있었다면 L군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말을 걸었을 때 연락처를 물어봤을 수도 있고, (그 정도 눈치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다못해 대놓고 찾아와 명함까지 내밀었는데... 그런데도 연락이 없다면 그건 확실한 의사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L군은 "나는 진심인데 그분이 내 마음을 잘 몰라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떨어지고 나서 "지난 경기는 주전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고 말한다고 재경기가 열리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L군이 도저히 포기를 못하겠다면 여행사에 연락을 하거나 찾아가 볼 수도 있겠다만... 나는 연락을 하기보다는 예쁜 추억으로 묻어두는 게 어떨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가능성의 저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저축의 온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때로 우리의 춥디 추운 인생을 서서히 훈훈하게 해준다"
L군이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여행사에 연락을 시도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이 기억을 잘 갈무리해서 저축을 해둔다면 가끔 꺼내보며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줄 예쁜 추억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20대 중반쯤이었나...? 당시 학원에서 잠깐 일을 할 때였는데 짧게 휴가를 받아 내일로 기차여행을 홀로 떠난 적이 있었다. 영주의 부석사를 시작으로 안동 하회마을, 대구 팔공산, 부산 해운대 등을 다녀왔었는데 대구에서 L군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늦은 밤에 대구에 도착했는데 대구에서 F클럽이 유명하다기에 한번 구경?이라도 할 겸 중앙로를 쏘다니고 있었다.
날은 추운데 그놈의 클럽은 찾질 못하겠고 한 20여분을 쏘다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저기요, F***클럽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상대는 2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이었는데 (뭔가 클럽 가는 느낌적인 느낌인 드는 분들 이어서...) 문제는 내가 길을 물어봤는데 깜짝 놀라며 막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뭐 서울 사람이냐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괜히 (장난) 끼가 발동해서 "하도 F***가 유명하다기에 서울에서 원정 왔네요."라는 시답잖은 드립을 치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당시 폰이 꺼진 관계로 내 번호를 적어주고 이따가 해장국이나 한 사발 하자며 웃으며 헤어졌다.
이 시국에 클럽은 무슨 클럽, 냉큼 핸드폰을 충전할 생각으로 PC방으로 달려가 폰을 충전시키며 그녀들의 연락을 기다렸는데... 안 왔다... 연락... 당시 그녀들이 어느 술집으로 간다는 말이 기억나 그쪽으로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로맨스의 끝을 보느니 미완의 로맨스로 남겨두길 택했고 그 길로 F***에서 잠깐 구경? 만 하다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날 팔공산에 올라 머릿속의 잡념들을 떨쳐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술자리에서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내가 말이야! 대구만 가면 말이야!"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곤 하는데 그때마다 "오빠 걔네가 그런 건 오빠 말투가 너무 간드러져서? 그런 거야!"라던가 "오빠 술집 갔으면 스토커 취급받았을걸?" 따위의 직언을 듣곤 하는데 뭐 어떤가! 그 로맨스의 끝은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말이다!
L군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전적으로 L군의 선택이다. 다만 경험자? 로서 말을 하자면... 모든 썸? 들을 포기하거나 추억으로 남겨둬서는 안 되겠지만 때론 추억으로 남겨두는 편이 훨씬 더 값진 썸? 들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F***클럽 아직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