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자신의 성격이 좀 다혈질이라 남자 친구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꼭 다혈질이라고 표현은 하지 않아도 "남자 친구의 ~것 때문에"라던가 "저도 화를 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등의 말들을 하며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말을 한다. 그래, 분명 화를 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당신은 참을 수 없어서 화를 낸 걸까?
청년 :.... 아뇨, 속지 않겠습니다. 속지 않겠다고요!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분노의 감정을 자아냈다? 단언컨대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1초도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하고 나서 화를 낸 게 아니에요. 분노는 더 돌발적인 감정이라고요!
철학자 : 그래, 분노는 한순간의 감정이지, 이런 이야기가 있네. 어느 날, 엄마와 딸이 큰소리로 말다툼을 벌였네.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지 "여보세요?" 엄마는 당황해서 수화기를 들었는데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었지.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딸의 담임선생이었네. 그걸 안 순간 엄마의 목소리는 정중한 톤으로 바뀌었지. 그리고 그대로 격식을 차린 채 5분가량 담소를 나누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네.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딸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청년 : 음, 흔한 이야기로군요.
철학자 : 모르겠나? 요컨대 분노란 언제든 넣었다 빼서 쓸 수 있는 '도구'라네. 전화가 오면 순식간에 집어넣었다가 전화를 끊으면 다시 꺼낼 수 있는. 엄마는 화를 참지 못해서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야. 그저 큰소리로 딸을 위압하기 위해, 그렇게 해서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한 걸세
청년 : 분노는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철학자 : 목적론이란 그런 걸세.
- 미움받을 용기 中,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남자 친구에게 어쩔 수 없이? 화를 냈다는 여자들에게 난 뜬금없이 직장 상사에 대해 물어본다. "직장상사가 어이없는 지시를 내린 적 없나요?" 라던가 "직장상사가 자기가 잘못해놓고 XX 씨에게 뒤집어 씌운 적은 없나요?"와 같은 질문을 말이다. 여기서 눈치 빠른 여자들은 "아..."하고 나지막한 탄식을 하고 눈치가 빠르지 못한 여자들은 "당연히 많죠! 글쎄 저번에는요!"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남자 친구에게 화내듯이 직장상사에게는 화를 안 내세요?"
다혈질이든, 남자 친구가 서운하게 했든, 남자 친구가 잘못을 했든, 화를 내면 안 되지만 참을 수 없었든 어쨌든 화낼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낸 것이라면 직장상사 앞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화를 버럭! 내고 남자 친구에게 "이럴 거면 헤어져!"라고 으름장 놓듯이 "이딴 회사 안 다니고 말아!"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우리는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상대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의 말처럼 분노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위압하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감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보다 분노를 참는 것에 익숙하다. 직장상사, 선생님, 클라이언트 등에게 뭔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을 해도 우리는 절대 곧장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우리는 애초에 직장상사에게 분노를 사용할까 말까 고민을 하지도 않고 분노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
애초에 분노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상사에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넣어두지 않는다. 대신 이해를 하고 넘어가든,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하든, 조용히 이직을 준비하든 다른 방안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직장상사에게는 하면서 왜 남자 친구에게는 못할까?
남자 친구를 직장상 사모시듯 모시라는 게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당신은 절대로 다혈질이라서, 혹은 남자 친구가 잘못했기 때문에 남자 친구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라는 거다. 당신이 화를 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던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분노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남자 친구에게 위압을 가하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한 본인의 선택이었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길 해버리면 그 사람은 변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데 어떻게 변하겠는가?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이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변할 수가 있다.
나도 처음에는 철학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여자 친구가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 "이때 내가 화를 내고 큰소리를 치면 여자 친구의 버릇을 고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며 철학자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분노는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여러 수단(도구) 중에 하나일 뿐이다.
또 어떤 이들은 "화를 내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 걸 어떡해요!"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연애를 하다 보면 분노라는 수단을 이용해 여자 친구에게 위압을 가하고 나의 주장을 손쉽게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직장상사만큼도 존중해주지 못하는 건 너무 야비한 태도야! 나에게는 분노가 아니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많이 있어!"라고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답답해하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직장상사가 변하지 않는다고 직장상사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직장상사의 행동을 이해하든,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든, 조용히 이직을 준비한다. 남자 친구에게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남자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든, 남자 친구가 변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방법을 강구하든,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든 당신에게는 분노 사용하는 것 외에도 많은 선택지가 있다.
혹시나 "아니 연애를 일하는 것처럼 해야 해!?"라고 느낀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당신은 당신이 잘못한 상황에서 남자 친구가 불같이 화를 내며 분노를 이용해서 당신에게 위압을 가하고 자신의 주장을 손쉽게 밀어붙였으면 좋겠는가? 아니면 당신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당신이 변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는가?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화를 내지 말고 다 이해하라는 게 아니다. 분노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라는 거다. 당신 자신을 감정의 노예라고 스스로 인정하지 마라. 당신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