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가 금사빠인 것 같아 걱정됐어요...
우리는 항상 나만을 위한 한 사람을 꿈꾼다. 남들이 뭐라 해도 항상 내편이 되어주고 나보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나타나도 나만을 바라봐줄 그런 사람. 그리고 이러한 욕심이 커지다 보면 상대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지고 자연히 상대의 과거가 거슬리고 불편해질 수밖에. 상대를 사랑하면 자연히 상대에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고 싶어 지겠지만 우리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지금 상대의 눈앞에 있는 건 '나'잖아. 그럼 된 거야!"라고.
처음 남자 친구를 만나고 모든 게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남자 친구를 못마땅하게 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첫 연애였는데 남자 친구는 저를 만나기 전 6명 정도 만난 것 같더라고요... 여자를 너무 쉽게 만나는 금사빠 같기도 하고... 절 만나는 것도 너무 쉬웠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다른 매력 있는 여자를 발견하면 그 사람도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히 생기는 감정이다. 그 사람에게 내가 첫사랑이었으면 좋겠고 또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마음.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상대가 내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와 나는 독립된 인격체이며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가까운 사이일 뿐 그 사람에게 너무 기대거나 바래서는 안 된다.
C양은 아무래도 첫 연애다 보니 뭔가 손해 보는 느낌도 들 거고 나보다 연애경험이 많은 상대가 C양에게 상처를 주거나 떠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건 C양이 남자 친구에게 너무 기대려고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 모든 것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불안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연애를 하며 상대가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기보다 자기 스스로를 찬찬히 살펴보자. 그리고 내가 상대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보고 그렇다면 상대와의 거리를 조금 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다 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네요. 남자 친구의 핸드폰을 보다가 남자 친구가 친구와 나눴던 대화중에 전 여자 친구를 그리워하던 이야기를 읽어버렸어요. 물론 저를 만나기 전에 일이지만 너무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남자 친구가 금사빠였구나 단정 짓게 되었고 또 저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아무에게나 다 그러는구나 생각이 드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첫 연애에 참... C양의 말처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구나... C양의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공감한다. 아마도 C양에게 했던 모든 말들이 사랑이 아니라 뻔한 레퍼토리같이 느껴졌을 거다. 물론 예전의 일이니 상대에게 화를 쏟아낼 수 없다는 이성적인 판단은 들겠지만 이미 감정은 상대방이 바람을 피운 것 이상으로 아팠을 거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에 보면 시후미는 토오루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생의 나도, 대학생의 나도, 언제나 토오루 눈앞에 있어."
남자 친구의 과거를 이해해줘야 한다던가, 다 그렇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남자 친구는 C양을 만나기 위해 멀리 돌아온 거야"라고 말이다.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매달리고 사랑을 속삭이던 그 장면만 떠올리지 말고 남자 친구의 과거 전체에 대해서 영화를 보듯 상상해보자.
아장아장 귀엽게 걸어 다니다가 소꿉놀이를 하며 다른 여자 아이에게 "여보~"라고 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때, 어떤 소녀의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 수줍게 첫 키스를 하고, 성인이 되고 날카로운 연애도 하고 몇 번은 연애를 거쳐 이렇게 C양의 앞에 나타난 거다.
시후미의 말처럼 고등학생의 남자 친구도, 대학생의 남자 친구도 언제나 C양 앞에 있는 거다. 남자 친구의 전 여자 친구는 추억을 가지고 있지만 C양은 남자 친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남자 친구가 나 아닌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말한 적이 있다니!" 가 아니라 "남자 친구가 이렇게 돌아서 내게 왔구나."라고 생각해본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이걸 알고 나서 몇 달간 고생을 했어요... 전 여자 친구에게 매달리던 남자 친구의 모습이 상상이 되고... 자꾸만 너무 힘들다며 제가 헤어지자고 했고 결국엔 헤어졌네요... 왜 저는 쿨하게 넘기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신경 쓰이지만 어쩌겠어하고 지나가지 못했을까요? 남들도 이런 이유로 헤어지나요?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제가 마음을 고쳐야겠죠...?
아무래도 첫 연애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탓이 아닐까? C양이 잘못된 건 아니다 누구라도 다 마음이 아팠을 거고 끙끙 앓았을 거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연애의 경험이 두어 번 더 있어서 "하긴... 나도 그렇게 매달린 적 있었지..."라며 상대의 마음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C양보다는 조금 더 차분히 받아들였을 수 있었을 거다. (그래도 아픈 건 마찬가지)
C양이 마음을 꼭 고쳐야 하는 건 아니다. 소싯적 아빠에게 "난 아빠랑 결혼할 거야!" 했다가 자연스레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이런 문제는 C양이 꼭 고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첫 연애부터 너무 힘든 경험을 한 것 같아 안쓰럽지만 너무 상처받지는 말자. 이 또한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자연히 이해될 일이니까. 힘내라 C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