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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로맨스 Dec 27. 2017

전 남자 친구 때문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 못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건 불가능이지 않을까요?

상담을 하다 보면 "제가 전 남자 친구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남자를 못 믿는 편이에요."라는 말을 하는 여자들을 많이 만난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트라우마까지 생겼느냐고 물어보면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던가, 술을 너무 자주 마셨다던가, 결혼하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자고 했다던가 뭐 그쯤의 사연들이다.



지난 파티에 왔었던 32살의 은행원 L양이 딱 그랬다. 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서 처절하게 헤어지고 나서 트라우마가 생겨서 남자를 믿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어쩌다 썸을 타도 자꾸만 바람을 피웠던 전 남자 친구의 기억이 떠올라 자꾸만 철벽을 치고 혹시나 사귀게 되어도 의심과 집착을 하다가 자연히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건 불가능이지 않을까요? 마냥 겁내거나 확인하려들기보다 조금은 느슨하게 '일단은 믿는 수밖에'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할 수밖에요." 


이런 나의 제안에 그녀는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전 남자 친구의 트라우마 때문에..."라며 트라우마 이야기를 하며 변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근데 정말 그녀는 트라우마 때문에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철학자 : (중략)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청년 :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철학자 : 말 그대로일세.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지.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네. 분명히 영향이 남을 테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야.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 미움받을 용기 中,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혹시 철학자의 말이 불편한 궤변이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차분히 생각을 해보자. L양이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 정말 전 남자 친구의 바람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아들러 심리학을 신봉하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L양에게 적용을 해보면 이렇다. L양이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은 전 남자 친구의 바람이라는 행동 때문이 아니라 L양이 전 남자 친구의 바람이라는 행동에 대해 부여한 의미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정말 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행동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래서 남자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면 연인이 바람을 피웠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 모두가 L양처럼 상대를 믿지 못하고 의심과 집착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가? 


물론 어떤 사람들은 L양처럼 남자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 인간 처음부터 바람피울 줄 알았어!"라며 전 남자 친구의 바람을 그 상대방 한 명에 국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뭐 사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내가 너무 매력이 없어서 그랬던 건가?"라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L양이 틀리고 다른 사람들 말만 맞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L양이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전 남자 친구의 바람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굳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는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을 L양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냐는 거다. 


쉽게 말해 똑같이 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어도 어떤 사람은 "그 인간 처음부터 수상했어!"라며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여기고 전 남자 친구를 잊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L양은 전 남자 친구의 바람이라는 행동을 "다른 남자도 다 그럴 거야"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 남자 친구 바람이라는 아픈 상처를 계속 상기하며 괴로워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누차 말하지만 L양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트라우마 때문이든 심심해서든 "남자들은 믿을 수 없는 족속이야! 언제든 바람을 피울 수 있으니 절대 믿지 말고 하나하나 다 확인해야 하고 인증을 다 받아야 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다만 L양의 그러한 태도 때문에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리스크를 감내하다면야 어떤 생각을 하든 L양의 자유다! (비꼬는 말이 절대 아님!) 


혹시나 L양이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고 변하고 싶다면 일단 스스로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생각부터 버리자.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신뢰를 위해 너무 많은 증거들을 원하고 있구나?"정도로 생각해보도록 하자.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버리면 현재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서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를 믿을 수가 있겠는가? L양이 정말 트라우마 때문이라면 L양은 앞으로 평생 남자를 믿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과거가 변하지 않는 것인데 트라우마가 어떻게 치료가 되겠는가? 


지금과 달리 남자를 믿고 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면 트라우마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자. 나의 행동이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L양이 원하는 모습으로 L양을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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