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이상해!
타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서운하거나 때론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상대방이 이상해!"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려버려서는 대화가 될 수 없다. 상대의 말을 모두 옳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지 충분히 들어보고 나와는 다른 관점이구나 정도의 선에서 지속적인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남자 친구가 잘해주긴 하는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인기가 많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제가 조금 이기적으로 굴어도 사랑을 많이 받았었죠. 그런데 지금 2년 정도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는 좀 달랐어요. 워낙 외모면 외모, 스펙, 능력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는 남자였고 무엇보다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고 냉철해요.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도 평소에 제게 뭔가를 아낀다던가, 저에게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연락도 이전의 남자들보다는 좀 적지면 그래도 꾸준히 해주는 편이었고요. 문제는 얼마 전에 결혼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크게 부딪히면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연들이 K양과 비슷하게 시작을 하지만 참... 이렇게 시작하는 사연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연애 중 트러블을 겪고 있는 커플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100명 중 90여 명은 자신들도 인정할 만큼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한다.
물론 사소한 일이라고 그냥 넘어가 줘야 하는 건 아니다. 사소하더라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고 또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그것을 수용할 수 없다면 헤어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너무 그 문제에게 집중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을 하게 만든다.
K양의 사연을 보자. 결혼 적령기에 2년여의 연애를 했다면 결혼관과 연애관은 확실히 마냥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K양의 연애에서 지금 당장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물론 결혼관과 연애관의 문제로 나중에 일이 벌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이고 그 과정에서 생각이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라며 놀라고 크게 생각하기보다 "나에게 잘해주긴 하지만 이런 부분은 아직 맞지는 않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 차이를 좁혀보려고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
더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만날 수도 있대요!
제 지인의 얘기를 하다가 여자 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어떤 다른 매력적인 이성을 만났을 때 호감을 느낄 수 있느냐의 주제로 얘길 했어요. 그런데 남자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말투로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누가 봐도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알아가고 싶은 게 당연하고 제가 다른 더 좋은 남자에게 간다고 해도 그건 잡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을 하네요.
저는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게 된다면 호감은 느낄 수 있지만 애인이 있는 상태이기에 마음을 절제할 것 같은데... 물론 절제를 했지만 정말 계속 끌린다면 그땐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하고 그 사람을 만나겠지만 저는 절제를 해본 뒤이고 남자 친구는 아예 정말 열린 마음을 가진 것 같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 정도 나눴는데 남자 친구는 저와 자기의 생각이 같은 것이라고 하네요. 제가 생각할 땐 분명 다른데 말이죠.
사실 이 주제의 답은 애초에 서로 기분이 상하는 말을거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지 않을까? 애초에 질문 자체가 상대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물어보면 대체 어떡하냔 말이다.
K양도 이렇게 생각해보자 회식자리에서 사장이 K양에게 "K양! 혹시 만약에 경쟁사에서 훨씬 더 높은 연봉과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하겠다면 자네는 어떡하겠는가?"라고 물어본다면 K양은 어떻겠는가? 물론 그럴 땐 눈치껏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저는 저를 키워준 저희 회사에 남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맞겠지만 사실 이건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는 질문이 아닐까? 사장이 해야 할 말은 충성 테스트 같은 질문이 아니라 "경쟁사에서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여러분들이 우리 회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나은 회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가 아닐는지...
또한 K양은 저는 절제를 해보겠지만 계속 끌리면 정리하고 만나겠다고 했는데, 이것과 누가 봐도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알아가고 싶어 지는 게 당연하다는 말과 뭐가 그렇게 다른 의미일까? 혹시나 "그래도... 다른데..."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남자 친구가 절제는 해보겠지만 그래도 계속 끌린다면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만나지 않을까?라고 말을 했다면 K양은 뛸 듯이 기뻤을까?"
앞서 말했지만 K양이나 남자 친구나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질문 자체가 애초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는 말이나 거짓말밖에 할 수 없는 질문이었던 거다. 물론 나였다면 "뭐? 너보다 더 예쁘고 조건 좋은 여자가 또 있다고!? 어디 어디!? 난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봤는데!?"라며 넘겼겠지만 이런 센스가 아무한테나 있는 건 아니니 이런 걸 바란 거면 K양은 욕심쟁이!
보험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더 이상은 안 만나고 싶어요.
뭔가 대화가 심각해지니 남자 친구는 제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으니 앞으로는 디테일하게 얘기하지 않겠다며 넘어가더라고요. 더 나은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건지... 혹시나 저를 보험식으로 만나고 있는 거라면 저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요.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앞서 말했지만 K양이나 남자 친구나 어떤 큰 잘못을 한 사람은 없다는 걸 먼저 짚어주고 싶다. 하지만 K양의 작은 실수를 짚어주자면 대화를 하며 상대방과 생각이 다를 때 그 차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가치판단을 해버리면 대화는 계속될 수 없다.
상대와 생각이 다를 때 그것을 너무 확대 해석하거나 가치판단을 해버리고 따지듯이 대화하기보다 "응? 상대방은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으로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 느낌으로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좋다. K양의 경우를 보자. 연애관에 대해 K양이 민감하게 반응을 하자 남자 친구가 아예 입을 닫아 버리지 않는가?
또한 앞서 언급했듯 관계에 있어서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트러블 자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전후 맥락과 함께 여러 가지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래, 물론 더 좋은 여자에게 갈 수도 있다는 말이 어떻게 듣기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질문의 문제도 있으며 어쨌든 K양 조차 절제는 해보겠지만 안된다면 정리하겠다는 도긴개긴 수준의 대답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다른 여자에게 갈 수 있다는 말만으로 남자 친구를 평가하기보다 남자 친구의 평소 태도도 함께 따져보자. K양이 보기에 남자 친구가 평소 K양을 보험처럼 대했나? 만약 그렇다면 이별이 맞겠지만 아니라면 평소 지나치게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남자 친구가 눈치 없이 산통 깨는 발언을 했다 수준으로 충분히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