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쯤이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망설임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무언가가 '연애'라면 이것저것 따져보고 걱정하기보다 일단은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 가벼운 마음의 선택 때문에 상대에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뭐... 그쯤이야... 얼마간 아파하면 될 문제는 아닐까? 또 그러한 일들이 추억이 되고 또 경험이 될 테니 말이다.
눈앞에 어떤 흐름이 생겼다면 일단 흘러가 보면 된다. 상대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에 걸려들면 될 일이다. 이 산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이 묶여 있는 것보다야 그 편이 훨씬 근사하지 않은가.
- 기사단장 죽이기 p128, 무라카미 하루키
평소에는 꽁냥꽁냥 한 드라마를 보며 내게도 저런 달콤한 일이 일어났으면 하다가도 막상 썸을 타게 되면 즐거워하기보다 온갖 고민에 빠져버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하루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물론 당신의 고민이 아주 쓸모없는 고민은 아닐 거다. "상대는 날 좋아하지 않는데 나만 오버하는 거 아닐까?", "혹시... 어장관리면 어쩌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괜찮을까?" 따위의 고민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고민이고 한 번쯤 고민을 해볼 만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답이 없는 고민이다.
그렇지 않은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상대방의 마음을 고민해 본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산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이 묶여 있는 것 보다야 흐름을 따라 흘러가 보는 것이 좀 더 나을 수 있는 것처럼 침대에서 뒹굴고 괜한 머리를 쥐어뜯는 편보다는 차라리 리드미컬하게 썸을 타는 편이 훨씬 근사하지 않을까?
사실 썸을 타며 이런저런 고민들에 빠지는 건 정말 꼭 따져봐야 할 중요한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보자.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헤어지기밖에 더하겠어?"라고 말이다.
사랑의 상처가 별것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또 막상 따져보면 뭐... 별거인가...? 가만히 우리의 지난 연애들을 돌이켜보자. 사랑을 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또 마냥 상처만 받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리 아픈 연애를 했어도 행복한 나날들이 있었을 것이며 상처 때문에 어떤 연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지만 나름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또한 조금 무책임하게 얘기하자면 내가 뭐라고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숨은 의도가 있다한들 까짓것 한번 그 숨은 의도에 걸려주면 될 일이다.
이렇게 가볍고 무책임하게 이야길 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고 어떤 불안한 요소를 가지고 있든 침대 위에서 막연한 고민을 한다는 건 이미 마음이 움직였고 둘 사이에 나름의 흐름이 생겼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망설여진다면 침대 위에서 알 수 없는 상대의 속마음과 미래를 고민을 해서 얻게 될 이득이 뭘 지도 한번 생각해보자. 시작해보지도 않고 상대의 속마음만 궁금해하다가 썸이 흐지부지 돼버리면 "거봐 이럴 줄 알았어~ 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 정도...? (이게 이득인가...?)
그러니 어떤 흐름이 생겼다면 그냥 흘러가 보자. 여러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흐름이 생겼다는 건 이미 당신의 마음이 넘어갔다는 거고 이건 당신이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냐. 좋아하잖아! 그럼 된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