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바로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바로님께서는 많은 글에서 선택을 강조하시는데 정말 공감해요. 그리고 저도 평소 그렇게 생각을 했었고요. 그런데 요즘 문득 그런 연애방식이 결국은 자기방어적인 태도이고 상대를 덜 사랑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와 트러블이 있을때 관계유지라는 큰 가치를 위해 자존심을 접을 줄도 알고, 자신을 깎아내는 듯한 내면의 고통을 감내하는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요? 트러블이 생겼을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가 아닐때 이별을 선택하는 식의 연애는 진실되지 못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L양
분명 L양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지금 L양의 질문은 내 글을 불편하게 읽으며 악플을 다는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다.
내가 트러블에 대해서 선택을 강조하며 내 기준에서 상대의 행동이 수용가능한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라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면 맞춰가야지! 그게 무슨 사랑이냐!"라는 식으로 반박을 한다.
내가 선택을 강조하고, 내 기준에서 상대의 행동이 수용가능한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라는 말은 "잘맞으면 만나는거고 아니면 헤어지는져야지!"라는 말이 결단코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건 '자립'과, '통제감' 딱 두가지다. '자립'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이다. 많은 사람들은 연애를 하면 둘이 아닌 하나라고 생각하며 자꾸만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고 하거나 나를 억지로 상대에게 맞추려고 한다.
이렇게 억지로 서로를 맞추려는 시도를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합리화를 해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런식의 연애는 자립적이지 못한 것이고, 결국 서로 맞춰간다는 미명아래 끊임없는 트러블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통제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내면, 행동,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자신이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믿는 믿음'이다. 내가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껴야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만약, 현재의 상황을 내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금방 불편함을 느끼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위의 자립과 통제감을 연애에 적용해보면 이렇다. "내가 상대를 통제의 대상으로 보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때문에 통제감을 잃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하지만 상대를 통제의 대상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이자 자립한 인간으로 본다면 우리는 상대를 통제할 필요를 못느끼게 되고 내 삶의 통제감을 잃지 않을 수가 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면 이렇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상대는 독립된 인격체이고 자립한 인간이므로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위해 달라져야하는 존재(통제의 대상)가 아니다. 그러니 상대가 나와 맞지 않는 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다보니 때로는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상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겠지만 그때 제일 먼저 상대가 나의 통제의 대상이 아님을 상기하여 통제감을 찾고 상대와 나를 바꾸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이끌어갈 방법을 강구해보라는 거다.
상대와 내가 고슴도치라고 생각해보자. 마음 같아서는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자꾸만 서로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고 피를 흘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가까이 가지 못하는것을 안타까워하며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상대의 가시를 우악스럽게 뽑아내고 기절할것처럼 아파하면서도 자신의 가시를 뽑아내려고 한다.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이겨내고 서로의 가시를 다 뽑아낸다고 둘이 하나가 되는건 아니다. (대게는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조금더 가까워졌을뿐 우리는 끝내 개인이라는걸 직시해야한다.
상대와 내가 고슴도치라면 서로를 찌르는 모든 가시를 뽑아내야 사랑을 할 수 있는건 아니다. 서로의 가시를 사랑의 방해물이 아닌 서로의 개성이라는걸 인정하고 그 가시를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도 사랑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