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당연스레 여기던 것에 관심을 주게 되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다. 몇 주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샤워하다 문득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보았는데 그 오른쪽 귀퉁이에 검은 줄이 나 있는 것 아닌가. 먼지가 묻었나 싶어 여러 번 씻어보았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씻고 나와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모르긴 몰라도 발톱 안으로 검은 줄이 생겨난 것 같았다. 관련해서 찾아보니 두 가지 중 하나일 듯 보였다. 무엇에 부딪혀 생겨난 멍이던지, 피부 안쪽에서 생겨난 흑색종일 듯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 부딪혔던 기억이 없으니 흑색종이 아닌가 싶었다. 흑색종은 피부암 계통이다. 동양인에 경우 매우 드물지만, 생기게 되면 주로 엄지발가락에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곳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초기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생존율도 매우 높은 편이다. 초기에 발견되지 못하는 경우는 림프계통을 통해 온몸 어디에라도 전이될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덜컥 겁이 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치료기간 고통스러울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마음을 잠식해 갔다. 걱정이 커질수록 흑색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초기에는 어떤 증상들이 있는지, 내 증상과 유사한 것은 무엇인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건지,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는데 자꾸만 내 증상과 유사한 증상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흑색종으로 의심한 그날부터 엄지발가락에 통증과 심한 악취가 났다.
더 이상은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근처에 그래도 유명하다는 피부과에 방문하여 한 시간이라는 대기시간을 견뎌내고 의사 앞에서 발가락을 보이는 순간, 너무나 평화롭게 그것도 신속하게 네 글자로 진단이 되었다. “내성발톱”. 내성발톱으로 인해 발톱 안에 멍이 든 것이다. 허망한 마음을 안고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받아 돌아왔다.
분명 좋은 일이 것만 허탈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간 온통 흑색종이라는 걱정에 온몸이 잠식되어 갔는데, 단 네 글자, “내성발톱”이라는 진단으로 인해 온몸과 마음이 탈탈 털려서일까. 의사의 진단이 정확했는지 약을 쓰는 그날부터 통증과 악취가 사라졌고 일주일이 지나자 발톱에 검은 선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악성종양인 흑색종보다, 악취와 통증이 가득한 내성발톱보다, 강력한 건 걱정이요, 두려움인 듯하다. 언제 찔렸는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발톱으로 인해 살이 곪아서 통증과 악취가 나듯,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듯 보이지만 온몸에 악성 종양이 퍼져나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듯, 걱정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다가와 온 생각과 정신을 곪게 만든다. 정작 마주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텐데.
방심하지 말아야지, 결국 지나가는 일이요, 겪고 보면 별일 아니다 생각해야 하는데, 뼈에 사무치게 그리운 님을 찾아오듯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한 방편은 무엇일까? 병에 맞는 약을 쓰면 금세 그 병이 사라지듯 내 영혼의 근심을 걱정을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알약은 무엇인가?
과거는 지금의 나를 만들고, 미래는 현재의 나를 변화시킨다. 현재의 걱정과 근심을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소망이요, 미래가 주는 희망이다. 그 소망이 희망이 현재의 나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날 선 근심의 발톱을 대할 때, 희망이라는 알약을 먹자. 소망이라는 약을 바르자. 사랑이라는 밥을 먹어 온몸을 튼튼히 하자. 그 어떤 폭풍에도 뽑히지 않는 갈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