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재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1985년 12월,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3개월의 수련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86년 3월 1일부터였다. 그때부터 14년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로, 목사로 주님을 섬기다가 독일에 선교사로 파송 받은 것은, 1999년 9월이었다. 그때부터 만 10년간 독일 사역을 하였고, 2009년 9월 다시 한국에 와서 계속 사역을 이어갔다.
그렇게 30년을 숨 가쁘게 주신 사명에 올인하면서 힘겹게 매일을 살아왔다. 그러던 2014년 2월,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영산수련원 통합 원장으로 가면서 30여 년 만에 사역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수련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주일 설교는 계속했지만, 성도들을 책임지는 목회의 부담을 갖지 않으니, 마치 나를 짓눌렀던 마음의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은 시원함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해 연말까지 안식년 아닌 안식년을 보냈다. 새벽 예배를 드리지 않고, 철야 예배도 드리지 않고, 주일 7부 예배 설교만 하면서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짧은 11개월 동안 많이 변해버린 서울의 곳곳을 다녀보고,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내 삶의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자전거를 사서 수십 년 만에 라이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걸으면서 지리산 자락 곳곳을 누비는 코스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치이는 목회의 현장을 벗어나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를 가졌다.
나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우리 산하의 숭고함과 단순함과 유려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인공으로 꾸미지 않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이은 둘레길이었기에 더 자연스럽기도 하였다. 둘레길 3코스를 걷던 어느 날, 작은 산을 넘게 되었다, 아침부터 걷다 보니 많이 지치기도 했고, 산굽이를 넘어 마침 그늘이 있어 잠시 작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내 시선이 닿은 곳에 한 무리의 개미 떼들이 있었다. 수천 마리는 됨직한 개미 떼들이 어딘가를 열을 지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장난기가 동해 나뭇가지로 개미들의 행렬을 흩어 놓았다. 그러자 개미들은 순식간에 다시 행렬을 이어갔다. 몇 번을 해도 개미 떼들은 변함없이 그들 생의 목적인 양 그렇게 행렬을 잇고, 잇고, 이었다. 나는 개미 떼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더는 행렬을 흩을 수 없었다.
내가 비록 소설 ‘개미’를 쓴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아니었지만, 개미 떼들을 통해 생명과 삶의 의미를 조금은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삶이란 내가 해야 할 그 일을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해내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라는 것을. 그 후 다시 목회의 일상으로 돌아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 십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했고, 온갖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보내기도 했다. 강동 교회, 강남 교회, 그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 소하 교회에 오기까지.
그렇게 40여 년을 목회하고, 살면서 걱정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는 일이 왜 없었을까. 그럼에도 그 어떤 걱정과 염려도 나를 흔들지 못한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고, 나를 염려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도 다 지나갈 것임을 분명하게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기에 걱정하기보다는 감사하며 살고 있다. 개미들도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서 삶을 이어가는데,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