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마음이 예전에 비하면 물러 터졌다. 물에 푹 익힌 무처럼 손만 대면 부서진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지만, 마음먹고 해 보자 하는 일이 결코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마음먹으면 안 되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다르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수차례 팬을 잡았다, 놓았다, 반복한다. 이전과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열정이 문제인 듯하다. 무엇 하나 결론이 날 때까지 좌우 살피지 않고 달려가곤 했는데, 이제는 돌처럼 굳어진 의지가 두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누그러진다. 물러터진 무처럼 말이다. 마음이 차가워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달아오른 마음을 식히는 것이 참으로 고되었다. 찬양을 할 때 더욱 그랬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에 쉽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곤 하였다. 그때는 그 가사의 고백이 내게는 진심이요, 진실이었다. 그런 동요됨이 너무 좋아서 몇 시간을 앞에 나가 찬양해도, 뛰며 소리치며 찬양해도 지치지도 무료해지지도 않았다. 10대의 객기가 내게는 그렇게 발현되는 듯했다.
20대에 나는 살을 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지금이야 체력도 안 되고 의지도 박약하여 시도도 못해보고 있지만, 그때는 열흘도 흔들림 없이 금식을 했고,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고 두 끼를 절식하는 일도 몇 달을 쉽사리 해냈다. 종국에는 육식도 소금도 안 먹는 채식을 1년 가까이했었던 것 같다. 그게 내 몸에 좋은 일이었는지는 부차 한 일이겠지만, 의지로만 살을 빼는 게 결코 어렵지 않았다. 30대 후반, 이제는 40대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긴 하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도 있기는 하다. 다른 일이 아니라, 공부다. 학교 공부는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살을 빼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던 어렸던 나에게도 공부는 참 마주하기 어려운 친구였다. 그런 어려운 친구를 깔끔이 놔주지 못하고 30대까지 끌고 왔다. 석·박사과정을 마쳤지만 결국에는 논문에 걸려 이 친구와 깔끔한 이별을 하지 못하였다. 아직도 생각날 때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듯 적다 말은 논문을 읽어보곤 한다.
물러진 마음이 쓸데나 있을까? 다른 것은 알 수 없지만, 점점 더 마주할 수 있는 얼굴이 많아진다. 어렸을 적에는 마주하면 입이 텁텁하여지고 숨이 가빠오던 상대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누그러지고 물러지다 보니, 족히 대면할 만하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해진 덕택이다. 내 마음이 기뻐하는 가는 다른 문제이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다른 좋은 점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요즘은 생각하기를 내 안에 열정이 다시금 타오르기를 바라곤 한다. 열정이 있어야 꿈꾸는 일도 다짐한 일도 그 끝을 맞이할 것 같은데, 내 안에 불이 없이 꾸역꾸역 그 일을 해나가는 모습은 볼 때마다 곤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