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열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내가 군대에 간 것은 1980년 4월 24일이었고, 제대한 날은 1982년 12월 30일이었다. 지금도 45년 전 받은 군번을 암기할 수 있을 만큼 군대에 관한 추억이 몇몇은 있다. 그런데 군대 생활하던 당시 많이 들었던 노래 중에 가수 민혜 경이 부른 ‘2000년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수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그 노래를 내가 즐겨 부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노래가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노래의 제목 때문이었다. ‘2000년 이 오면,’ 젊은 날 나에게 2,000년은 까마득한 미래였다. 더구나 당시 아버님이 44살의 나이에 일찍 천국에 가시고, 그 충격이 내 삶을 흔들었던 당시, 과연 내가 2000년에도 살아 있을지, 또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젊은 날의 나는 많이 흔들리고 불안했었다. 소명을 받아 주의 종이 되었고, 교회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탄탄한 마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와 30대는 마치 비포장길을 달리는 버스처럼 흔들리며, 뒤뚱거리며 가던 여행이었다.


그런 내가 40세에 한국을 떠나 독일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00년을 독일에서 맞았다. 지금도 2000년 1일 1일 0시에 밖에서 천둥처럼 폭죽 소리에 맞춰 드렸던 새천년 송구영신 예배가 기억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5년이 지났다.


그 25년이란 시간 속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0년, 2001년, 2009년, 2025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25년 동안 나의 마음은 조금씩 여물어져 갔고, 다듬어져 갔으며, 익어 갔다. 물론 사람이란 것이 결코 완전하지 못하기에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평생 흔들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젊은 날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많이 옅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내가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생에 걸쳐 4명 정도. 그나마 1년에 한 번도 제대로 못 보는 친구들이다. 그저 경조사나 있을 때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그렇다고 톡이나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내가 섬겨야 할 성도님과 교회일 말고는 따로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 어떤 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운동도 함께하는 운동보다는 혼자 하는 걷기만 꾸준히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다. 심심하지도, 무료하지도 않다.


어느 때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왕따 시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조금은 심지가 굳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전적으로 시간 덕분이다. 결국엔 시간이, 세월이 나를 여물게 한다.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도 나고, 불안한 것도 나다. 행복한 것도 나고, 즐거운 것도 나다. 단 한 가지, 나의 삶만 견뎌내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단련되고, 익어가고, 단단해진다. 그런 나를, 너를, 기대한다.


들꽃을 바라보는 중년을 AI로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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