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딸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 마주한 얼굴은 분명 생판 남인 의사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평생 함께 할 가족 중에는 10달을 그 몸속에 품겨 있다가 8시간의 진통 끝에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한 내 아내의 얼굴을 먼저 보았을 것이다.
물론 그 긴 시간을 진통을 겪었으니 아이의 엄마인 아내는 아이를 제대로 살필 정신이 없었겠지만, 다행히 아이의 아버지인 내가 병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신생아실로 향하는 아이를 에스코트할 수 있었다.
아이를 에스코트하며 본 아이의 얼굴은 양수로 퉁퉁 부어 있었고, 엄마 몸속에서 한껏 웅크렸던 몸을 열 달 만에 편지라, 이리 저리로 손과 발을 꼬물거리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신비한 것은 이미 그 얼굴 속에 내 어머니가 있었고, 내 아버지가 있었으며, 아이의 엄마가 있었고, 아이 엄마의 아버지, 아이 엄마의 어머니가 계셨다.
오후 2시쯤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태어난 병원은 하루에 2회 오후 1시 반과, 7시에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다시금 아이를 보기 위해서는 오후 7시까지만 기다리면 되었다. 아이의 엄마는 출산 시 출혈이 멈추지 않아 정작 아이와 처음 인사하는 오후 7시에는 병실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가족 대표로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인 아이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신생아실로 향하는 그 걸음, 아이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그 시간, 아직도 생생하다. 혹시나 내 아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 아이가 처음 태어나 찍었던 사진을 여러 번 돌려보며 초조하게 신생아실의 커튼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던지, 커튼이 열리고 아이들이 유리너머에 있는 부모가까이로 다가오게 되자 대번에 누가 내 아이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아까 보았던 그 얼굴들이 딸아이의 얼굴에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게로 다가오자 열심히 팔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하였다. 또 아직은 회복 중이던 그녀의 엄마를 위해 자녀와 부모 사이를 가르던 유리 너머에 보이는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핸드폰에 동영상으로 담았다.
이후 딸아이의 여러 영상을 찍었지만 그때 영상이 가장 긴 테이크였다. 10분가량을 찍고 다시금 커튼이 닫히게 되었는데 겨우 10분이었지만 내 인생이 변하는 시간이었다. 원래는 아들이었는데, 언제가 남편이 되더니, 이제는 아빠가 된 것이다.
아빠의 삶을 살아 낸 지 19개월 정도 되었다. 아이가 사랑하는 순위를 매겨보자면, 포도, 야쿠르트, 젤리, 엄마, 토끼인형, 강아지 인형, 그 뒤쯤 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지난주에 산 패티 인형이 내 앞일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게 나는 순위가 밀리는 것 같다. 나중에 친한 친구가 생기며, 연인이 생기면, 자녀가 생기면, 지금도 한찬 뒤인 아빠를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내게 딸아이는 19개월이 지나며 점점 앞으로 점점 더 깊숙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바라봐도 얼떨떨하기만 했던 기분이 이제는 떨어져 있어도 눈을 감아도 쉽사리 그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평생 내가 지켜내야 할 인생이고, 붙들고 간 인연이어서 그런지, 아이가 자면 깨우고 싶고, 깨면 재우고 싶은 그런 알 수 없는 마음이 수시로 든다. 그래서 딸아이는 내게 무순위다. 순위가 없다. 언제든 기다릴 필요도,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 편하게 가장 먼저 달려오고 싶은 아빠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