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내 어머니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나이는 꽃다운 24살이었다. 어머니보다 2살 어린 아버지는 22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53살에 첫 손자를 보았다. 어머니 당시의 부모들은 대개 50대 초중반에 그렇게 손주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자식을 낳거나, 손주를 보는 시기가 늦어졌다. 나 역시 60이 넘어 두 아이가 다 결혼했고, 손주는 그보다 더 늦어 64살에야 첫 손주를 보게 되었다. 아들 역시 36살의 늦은 나이에 첫 자식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몇 살에 자식을 낳았든지 처음 해보는 부모 역할은 누구나 힘들고 낯설다. 부모의 손길이 없다면 살 수 없는 갓난아기 시절, 아이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울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배고파도 울고, 졸려도 울고, 아파도 울고, 똥을 싸도 운다. 그리고 처음 대하는 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수많은 불면의 밤을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19개월 된 딸의 아버지가 된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자기 누나보다 조금 더 일찍, 작게 태어난 아이는 유난히 짜증 치레가 많았다. 낮도 많이 가렸고, 어떤 아이보다도 많이 울고 또 울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울음으로 일관할 때가 많았다. 아무리 우는 이유를 물어봐도 답은 하지 않고 우는데 어느 때는 5시간 넘게 울기도 했다.
그나마 아버지인 내가 있어서 놀아주면 울음을 그쳤고, 그 덕에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그렇게 울던 아이가 이제는 아버지가 돼서 19개월 된 딸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고 있다. 아이가 조금 울고 보채려고 하면 넓은 배 위에 올려놓고 달래는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감정이 있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살아 보니 사람들이 사는 것이 다 엇비슷하다. 다 다른 것 같은데, 또 어찌 보면 다 비슷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역시 ‘생.노.병.사’가 아닐까 한다.
태어남이 같고, 늙음이 같으며, 병듦이 같고, 누구나 죽음도 똑같이 맞는다. 그런 인생에서 벗어날 이가 누가 있으랴. 조금 많고 적음, 조금 빠르고 늦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잘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도 한평생이고, 저렇게 살아도 한 번인 인생이니 잘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 살아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없는 것에 열받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남의 떡에 미련 두지 말고, 나의 것을 귀하게 여기면서 그것을 즐기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저마다의 삶의 고난의 짐을 지고 사는 것임을 기억하고, 고난이 다가올 때 묵묵히 그 짐을 지고 살아내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그렇게 19개월 된 딸을 행복한 짐으로 품에 안고 사는 아들을 보니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행복한 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짐을 둘에서 넷으로, 이제는 다섯을 지고, 오늘도 나는 행복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