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어렸을 적 여름 방학을 생각하면 제대로 떠오르는 기억이 많지 않다. 당시 아버지들의 여름휴가는 짧디 짧았고, 그 짧은 시간을 대게 가족들과의 추억이라는 명목 하에 바다로 향하는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나 다 가는 바다인데 내 아이만 못 가면 기죽을까 싶어 주 6일 출근에 매일 야근을 하던 아버지들은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휴일을 길 위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 휴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의 회색 프라이드 뒷 자석이 떠오른다. 본래 앞 자석과 뒷 자석 사이 공백이 있는데 이를 에어메트로 채워 다리를 쭉 뻗고 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지금에야 안전문제로 기피하겠지만 당시에는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 유행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넓어진 뒷 자석에서 누나와 함께 놀다, 잠들다, 노래하다, 먹다, 쉬다, 짜증 내다, 자다, 그렇게 휴가지로 향하던 기억이 어찌 보면 어릴 적 휴가에 대한 유일한 기억 같다.
휴가와는 별개로 방학은 언제나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내게 있어서는 남들과는 색다른 즐거움이었는데 대게는 학교를 가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고 집에서 논다,라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는 학교를 가지 않는다, 언제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집에 있다, 이 사실이 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도대체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지도 않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나는 어떻게 목회자가 된 것일까.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아이들과 동일한 것은 방학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방학이 다 지나 있었고 내게 남은 건 며칠 남지 않은 개학 전에 벼락치기로 해내야 하는 방학 숙제들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교 때에 방학이 가장 완벽했다고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학제여서 겨울방학은 짧았지만, 여름 방학은 6월 초 시작으로 9월까지 이어졌으니 장장 3개월의 시간 동안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공부에서의 자유, 사람에게서의 자유. 책임감에서 자유. 방학에는 한국에 들어오곤 하였어서 유학시절 홀로 감당해야 했던 내 삶에 대한 책임감에서 자유롭게 되곤 하였다. 그래서 여행도 다니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추억을 쌓아 갔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사역을 시작하고 대학원을 다닐 때는 월요일에는 학교수업으로 토요일에는 찬양팀 연습과 청년부 사역으로 도저히 쉬는 날이 없어서 휴가 날만을 기다리곤 했었다. 모든 사역과 공부로부터의 해방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기까지 꽤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에는 그래도 아내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기쁨을 누리곤 했다. 코로나 기간이었기에 해외로 나가지는 못하였지만 연애 기간이 짧았다는 이유를 대가며 국내에 여러 여행지를 다니곤 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다. 아이가 모든 결정에 중심이 되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숙소가 아이가 지내기 편한 장소인지, 아이가 즐거워할 만한 액티비티가 있는지, 아이가 가장 편한 이동시간은 언제인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했고, 짐 자체도 가방 하나도 채우지 못하고 다녔던 우리인데, 이제는 아이 용품으로 트렁크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비단 휴가뿐이겠는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아내도 아니라, 내 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이번 휴가도 아이 프랜들리한 일정과 숙소를 정하여 가게 되었다. 아이는 보통 때도 엄마에게만 들러붙어 있었지만 낯선 곳에 가게 되니 더욱 엄마에 품속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아내를 향해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이를 넘어서 현실적으로도 코알라 같은 아이 때문에 아내가 나를 도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평소보다도 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다행인 점은 우리가 간 숙소 두 곳 모두 아이가 좋아했다는 것이다. 첫째 날은 고성에 갔다. 아이의 낮잠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동을 했고, 도착해서는 정말 정수리를 태우는 것 같은 땡볕이었지만 양, 사슴, 토끼 먹이 주기 체험을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한동안을 아무것도 못하고 쉬다가 겨우 식사룰 했는데, 잠시 밖을 나가 보니 그새 날이 많이 식어 있었다. 그래서 식사한 것을 치우고 함께 산책을 하러 나갔다.
설악산에서 불어오는 것인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30도 치고는 꽤나 걸을 만하였다. 그런데 그 바람이 아이가 좋았나 보다. 군데군데 놓인 바위 위에 세워 달라 하더니 바람 치는 것을 느끼며 춤을 추며 까르르 웃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참 있다가 또 그 산책길을 걸으며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그날 오전 오후에 있었던 고생이 눈 녹듯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 아이의 웃음이 내게는 휴식이 되고 쉼이 되며 즐거움이 되는 것 같다.
바라기는, 딸아이가 나이를 먹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즐거워하는 일이 다양해진다고 하더라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기뻐하기를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쉼이 되기를 바윗돌 위에 춤을 즐기듯 날마다 살아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