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새로운 일은 내게 낯섦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교회를 옮겨 새로운 사역지로 향할 때, 교회에서 새로운 사역을 맡게 되었을 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다가온다. 지레짐작해 본다면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잘 해내고 싶은 열망이 커서 정작 그 일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듯하다.
참 어리석은 마음이고 생각이다. 이런 마음의 시작은 본래 어렸을 적부터 이어온 우유부단함에서 비롯되었다, 쉬운 결론을 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쉬운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시작은 그렇다고 하여도 그 시작으로부터 비롯되어 여러 사건을 통해 눈 덮인 언덕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거대한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리라.
낯섦을 염려와 두려움으로 이를 넘어 인생의 부담감으로 변하게 만드는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내 인생 첫 사역지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처음으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전에도 신학생으로 여러 교회를 섬기기는 했었다. 그러다 학부를 졸업하고 런던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6개월은 청년으로, 그 이후 6개월은 교육전도사로 시무하게 되었다. 청년의 때에는 특별함 없이 벨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학원 생활을 하며 주일에 교회에 나가곤 했다. 금요일에 찬양팀으로 섬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새해가 되고 유아부 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사역을 시작하게 되니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내 특유의 성실함으로 사역을 대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께, 학부모님들께, 아이들에게 내 마음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교회 일반적인 사역가운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성실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여 주셨고 초짜전도사의 사역을 금세 안정되게 해 주셨다. 문제는 그 성실함의 역치를 스스로 깨닫지 못했었던 것이다. 견고히 세워졌다고 생각했던 성실함의 벽은 학업으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고 여러 관계의 문제가 덮쳐왔으며 이는 극한 우울함으로 바뀌어 사역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결국 급하게 사역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끝내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인사하지 못하고 온 것이, 맡겨주신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 왔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인생의 짐이 되었다. 그 후 도망가듯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한동안 티브이에 영국이나 런던을 비추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괴로운 기억에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 처음으로 사역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시도했지만 그 인생의 짐이 괴로운 기억이 덮쳐와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사역지에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다행히 하나님께서 그 기억을 무디게 해 주시고 그 괴로움을 덜어 주셔서 사역을 다시금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새 이제 1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마다 그 기억이 괴로움이 찾아오곤 한다. 과연 부족한 내가 도망쳤던 내가 이 사역을 담당해도 되는 것일까, 혹시나 나로 인해 이 사역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질문하고 묵상한다.
3개월이 마법의 시간이다. 3개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일에 익숙해지고 주저함 없이 담담하게 모든 일들을 행하곤 한다. 이제는 그 과정이 학습되어서 새로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다가오는 그 괴로움이 질문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겨내는 것이리라. 어두움도 주저함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이겨내는 것이다. 일단 눈 딱 감고 그 시간을 지나간다면 나를 괴롭히는 그 어떠한 문제라도 끝이 있을 테니 말이다. 요새 새로운 사역을 시작함으로 바쁘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눈을 질끈 감고 버텨내야 할 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