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내가 전도사로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만 39년이 지났다. 이제 40년을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으니 참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절감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역은 낯설다. 생경하다. 수만 번은 했을 설교임에도 매번 설교의 자리에 설 때면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새로운 사역지를 만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런데도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의 연약함이거나, 부끄러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두렵지는 않았다. 피하거나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낯섦이 나를 설레게 했다. 부끄러움이 많고, 익숙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담담하게 새로움을 받아들였다.
처음 교회학교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독일에 갈 때,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길로 사역이 휘어갈 때도 놀랍기는 했지만, 두렵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인도하실까 하는 묘한 설렘이 있었다.
적어도 하나님이 먹여는 주시고, 일을 하게 하실 터이니 그것이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품기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몇 명의 작가와 책 몇 권이 있다.
그중의 한 사람은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이고, 그의 책 ‘사선을 넘어서’이다.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존경하는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본처의 아들들에게 갖은 구박을 받았다. 그러다가 10대 시절, 당시로서는 불치병인 폐결핵에 걸려 죽어갈 때 그를 전도한 목사의 사랑과 기도로 병이 낫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평생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서원한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신 대로 당시 일본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 할 수 있는 도쿄의 빈민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 빈민가에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도둑, 장애인, 창녀, 살인자 등 온갖 부류의 범죄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선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자신이 온갖 사선을 넘으며 복음을 전하는 드라마틱한 삶을 오히려 담담하게 기술했다.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읽었던 그 책은 주의 종이 가는 길이 결코 꽃길이 아님을 알게 했고, 그러기에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이었든 오히려 감사함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작가가 있었다. 영국의 의사 출신 작가인 AJ 크로닌이라는 작가다. 그는 전문 작가가 아님에도 뛰어난 문장력과 주제 의식으로 갓 사역을 시작한 전도사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의 소설 중 나를 감동시킨 첫 번째 책은 바로 유명한 ‘천국의 열쇠’였다.
그 책에는 ‘프랜치스 치셤’과 ‘안젤모 밀리’라는 두 신부가 나온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지만, 사제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안젤모는 가톨릭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추기경에 오르고, 치셤 신부는 시골 작은 성당의 주임신부로 늙어가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소설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일반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안젤모가 신부로 승승장구하기까지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사제라기보다는 정치가의 길을 걷는다. 반면에 치셤 신부는 올곧은 성격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사제로서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사람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안젤모를 성공자로, 치셤을 실패자로 분류한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내가 느낀 승자는 치셤이었다. 세상에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영혼을 책임진 성직자라면 치셤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나를 지배한 생각들이 나의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안젤모가 아닌 치셤의 삶을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다는 생각이다.
자, 어차피 이래도 한 번, 저래도 한 번인 삶의 길을 오늘도, 내일도 걷고, 걸을 것이다. 이왕 사는 것. 눈을 질끈 감든, 눈을 부릅뜨든, 신명 나게 살아 보자. 너무 무서워하지도 말고, 너무 설레지도 말자.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내가 갈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내가 처음 사역을 시작한 39년 전, 만난 이들을 아들이 39년 만에 담당 목사로 만났단다. 아들이 백일이 되어 잔치할 때 아들을 안아 준 구역장님이 아들 교구의 총무 권사가 되었다니 세상에, 요시 세상은 좋은 의미로 요지경이다. 그 요지경 속에서 아들이 눈을 부릅뜨고 가가와 목사처럼, 치셤 신부처럼 신나게 사랑하며 일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