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아이가 밤새 칭얼 거린다. 몸이 아파서이다. 지난주 화요일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원을 가고 약을 먹으면 곧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을 가고 약도 먹였다. 근데 그 열이 화요일, 수요일을 넘어 토요일 오후까지 이어졌다. 목요일 저녁부터는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결국 상급병원에 가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그렇게 여름 내내 기다려왔던 휴가기간이 아이의 열과 함께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휴가인지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아이를 보는 것은 내 차지였다. 휴가가 월요일부터 시작했지만 월요일, 화요일 일이 있었기에 이제 좀 쉬어보나 했는데 아이가 아픈 것이다.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가도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금세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찼다.
아픈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아이와 그리 친하지 않은 아빠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로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지만 허둥지둥 대며 아이를 보살폈다. 아이에게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어땠을까, 아빠와 함께여서 더 힘들지는 않았을까. 아이는 이런 마음을 모르는 듯했다. 엄마가 퇴근하고 오면 금세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러고는 온통 설움을 내뿜는 듯 그 품에 안겨 울어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밤새 아이를 보살폈던 것은 아이의 엄마였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열 보 초를 서며 밤을 지새웠다. 나라면 금세 잠들어 버렸을 텐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이를 지켜내었다.
비단 아이가 아팠던 이번 주만이 아니라 평시에도 아이 엄마의 정신은 온통 아이에게로 향한다. 아이에 대한 걱정, 아이의 필요를 채우고 싶은 마음들, 아이에게 더 좋을 것을 주고 싶은 열정이 엄마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 마음을 대할 때면 같은 부모라 불리는 것이 미안하기까지도 하다.
어렸을 적에 한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내 어머니는 기억 못 하지 않을까. 어느 비 오는 날 시내에 가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내 기억에는 웬일인지 누나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그 기억의 등장인물은 어머니와 나뿐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했던 것 같다. 칭얼거리는 나를 달래기 위해 어머니가 나를 업으셨다.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었을 텐데, 또래 중에 큰 편이었던 나를 또래 중에 작은 편인 어머니가 업으시고 그렇게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셨다. 그날 결국 버스를 탔는지, 탔다면 어디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업고 계시던 어머니의 사랑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근래 들어 장례를 두 번 집례 하였다. 목사는 성도의 삶을 어르는 사람이다. 그 삶을 어르고 달래어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이다. 그러다 보니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그 곁에서 함께하는 이다.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 그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이다. 그래서 장례는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이다. 이번 두 번의 장례는 모두 부모님이 하늘나라로 가신 경우였다.
장례를 집례 하며 그 자녀들의 자리에 내가 서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그저 생각일 뿐인데 마음이 막막해오고 저려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언제는 아니겠냐마는 내게는 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참 큰 듯하다. 의지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그득하다. 이제 누가 봐도 번듯한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고인의 자리에 눕는다 생각한다면 아찔했다. 너무 어린아이를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큰 기대가 되지 못하는 아빠라고 하여도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겠는가. 먼 훗날에 그 고인의 자리에 누울 때 아이의 마음이 헛헛하지 않도록 꾸준히 사랑해야 하리라. 나의 부모님이 내게 해주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