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필요한 것이 참 많다. 소모되지 않고 영구적인 것은 없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필요를 채우지만 어느새 새로 채워야 할 목록이 생겨난다.
몇 달 전 청바지 허벅지 부분이 헐어 구멍이 뚫린 것을 보았다. 나 같은 경우 살집이 있어 자주 그 부분이 헐어 바지를 버리곤 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헐어서 구멍이 뚫리는 일이 단체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지 하나만 헐면 다른 바지를 입으면 될 텐데, 그때쯤 산 바지들이 하나, 둘 줄을 세운 듯 차례대로 구멍이 뚫려 버린다. 그렇게 되면 바지를 한 벌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벌을 사야 한다.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도 똑같은 과정을 경험했다. 분명 구멍이 난 것은 하나였는데, 하나가 구멍이 나니 연이어서 다른 바지들도 허벅지 부분이 헐어 구멍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확인 한 바지만 해도 3벌이나 된다.
보통은 그런 바지들도 한번 수선집에 맡겨서 구멍 난 곳을 다른 천으로 덧대 입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옷을 수선집에 맡기기도 전에 다른 바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바지를 사야 하는 필요를 느꼈다고 해서 바로 사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에 있어서 특출 난 행동력을 보이곤 하는 나인데, 옷에 관해서는 큰 열심히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저 구멍 난 옷을 입든, 구멍 난 곳에 천을 덧대 입든 하였던 것이다.
어떤 옷을 살 것인가 고민하는 데도 한참이요, 그런 옷을 찾고 구매하기로 하는데도 여러 날이 필요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걸쳐서 사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살집이 제법 있는 내가 입어서 편하고 나빠 보이지 않는 옷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사고 소비해야 하는 일이 인생 가운데 너무 빈번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소비되고 수시로 구매되며 수시로 고민하는 것이다.
한때는 이런 소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옛적에는 수시로 소비되는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가내수공업을 통해 자기가 필요한 것을 자기가 만들어 사용했기에 만들 수 있는 것도, 소비할 수 있는 가짓수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통해 물품이 대량생산 되면서 그 가치가 떨어지고 이전에는 필요를 알지 못하던 것까지도 구매하여 소비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소비는 나날이 늘어가고 인제 와서는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게 되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소비는 물질을 써 없애는 행위로만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미세한 차원에서 소비는 옷이든 음식이든 어떤 물건이든 간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모습이 달라질 뿐이다.
음식을 소비하면 배설물과 에너지가 되고, 옷을 소비하면 알 수 없는 크기에 입자와 헌 옷이 남게 된다. 이를 통해 절약한 에너지도 있으리라. 결국, 물질을 소비한다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형태를 바꾸는 행위일 뿐이다.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물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특성이 변하는 과정은 자연적으로도 일어나는 일일 텐데, 소비를 통해 가속도가 붙는다. 그래서 소비는 이 과정을 더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 촉매의 역할이다.
이런 소비는 물질적인 부분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글도 그림도 음악도 기발한 생각들도 소비된다. 이런 것들은 스스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야 했던 옛적에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에야 먹고사는 것 이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여유 있는 자들만을 위한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이 소비자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여유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소비자이자 공급자가 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소비하여 쓴 글을 내가 보며 또 다른 감동을 얻는다. 이 감동이 다시금 내게 영감이 되어 또 다른 글을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비는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요 영원한 순례의 촉매일 뿐인 것이다.
이전에 한 기사를 보았다. 일본에 한 장어 덮밥집에 관한 이야기다. 그 덮밥집은 130년이나 되는 전통 있는 집이었다. 특별히 그 집에는 130년간 식지 않은 냄비가 하나 있는데, 바로 장어 덮밥 소스를 끓이는 냄비이다.
그 냄비는 지난 130년간 한반도 비워지지 않았고, 씻겨지지 않았다. 계속 재료가 추가되고 소비될 뿐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는 소스를 씨 소스라고 하여서 새롭게 오픈하는 장어 덮밥집에서 이 소스를 구하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붓는다는 기사였다. 위생적인 부분을 뒤로하고, 그저 그 소스의 재창조 과정만 본다면, 앞서 이야기한 소비와 공급의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관계로 나도 글을 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간에 이 글을 통해 영감을 얻고 새로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 내 유일한 숨 쉴 통로가 되었던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동아줄이 되기를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