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얼마 전 김포 공항 인근을 차로 지나다가 갑자기 옛 추억이 소환되었다. 처음 주의 종이 되고 나서 맡은 지역이 바로 그 근처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지금의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 그리고 김포 전 지역과 부천 일부 지역을 담당했다. 그곳의 교회학교 아동 지역 분교와 아동들을 돌보는 구역장들을 케어하는 사역을 했다.
특히 공항동에는 아동 지역 분교가 있어 수시로 그 거리를 다녔고, 공항 인근의 시외버스 정류장은 내가 김포 일대를 다니는 주요 거점 정류장이기도 했다. 옛 생각이 난 그 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의 고촌, 장기리, 사우리, 양곡, 하성, 심지어 강화도까지 가서 일을 하기도 했다. 특히 토요일에는 어린이들을 구역장님의 집에 모여 놓고 예배를 드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이 바로 휴대용 비디오 레코더였다.
그때가 1980년대 중반이니 아직 집에 비디오를 켤 수 있는 레코더가 없었다. 그래서 휴대용 레코더를 가지고 가서 아이들에게 성경 만화 영화를 보여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만화 영화를 보여줄 때면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이 구역장님의 집에 왔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까지도 모여서 나중에 그렇게 많이 모이는 구역에 지역 분교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지역 분교 가운데 한 분교는 이제는 수천 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기도 했다.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회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평화 시장 인근에서 옷 장사를 하시는 분이 여럿 있었다. 그분들 가정을 찾아가서 기도를 해드리려고 하니 당신들은 밤 12시가 넘어야 집에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는 새벽 1시에 집을 찾아가 소리 죽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공항 인근을 스치듯 지나가며 떠오른 39년 전의 기억에 그때의 선생님, 구역장님들의 얼굴과 이름이 하나둘 소환되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나의 20대, 풋풋한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내 시간을 소비했던 시절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누나가 경희대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국어 교재에 당시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였던 서정범 교수의 수필이 실렸었다. 우연히 그 교재를 보다가 서정범 교수의 수필 두 편을 보았다. ‘미리내’와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하는 수필이었다. 그 두 수필은 젊은 나의 감수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어린 시절 시와 소설을 좋아했던 내가 수필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수필,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에서 놓친 열차는 옛 추억을 의미한다. 이미 스쳐 지나간 추억, 기억은 비록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아팠어도 지나고 나면 다 아름답게 포장된다는 의미의 수필이었다.
아직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염치없던 20대 후반의 기억들이 나에게는 놓친 열차가 되었나 보다. 그야말로 우당탕탕, 눈치코치 없이 열심히만 하던 그 시절의 많은 기억이 이제 내게는 아름답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그 시절의 놓친 열차를 떠나보낸 지 어느덧 40여 년이 되었다.
그 후로도 많은 열차를 탔거나 놓쳤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은 고스란히 나의 지금에 녹아있음을 느낀다. 세월은 망각도 같이해서 어떤 열차는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보낸 시간들은 다 아름답다.
생각해 보면 삶에서 낭비란 없는 것이다. 옷이 해어지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낳은 결과요, 열매이다. 그저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사랑하며, 열심히 작은 것으로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을 돕는다면 이보다 멋진 소비가 어디 있으랴.
명예가 무엇이고, 부귀가 무엇이며, 출세가 무엇이고, 잘남이 무엇이랴. 나는, 그렇게 주신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평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