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집을 정리하고 몸을 씻고 나와서 컴퓨터를 켰을 때 시간이 오후 8시 37분이었다. 아까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방문했을 때가 오후 4시 40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통은 4시쯤 아이를 찾으러 가는데, 정수기 필터를 갈아 주러 오신 기사님께서 10분 정도 늦기도 하셨고, 작업 과정 자체가 머릿속에 그렸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4시 30분에나 집에서 출발하였고, 4시 40분에나 어린이집 벨을 누를 수 있었다.
벨을 누르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이가 차에 탔을 때 보여줄 만한 영상을 준비하기 위해 킨 핸드폰 화면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시 40분. 시간을 보고 나서야 오늘 올릴 글을 썼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누구와 약속했던 부분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서로 글을 나누기로 하고 다짐하기를, 어찌 보면 이 글의 나눔을 지속하기 위해, 또는 강제하기 위한 장치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하였다. 것도, 내 임의로 월요일 오후 5시로 연재 일시를 정하였는데, 꽤 이 장치가 잘 작동하여 지금까지는 늦더라도 당일 오전에는 글을 올리곤 했었다.
그런데, 4시 40분이라니. 아이가 당장 나온다고 하더라도, 차에 태워 집에 가면 이미 4시 55분이 될 것이고, 아이를 차에 태우고 급하게 차에서 무언가를 쓴다고 하더라도, 10분, 20분 사이에 무슨 글이 쓰이겠는가. 아이와 집에 돌아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아이가 침대에 눕는 그 시간까지 무엇도 하기가 어렵다. 철면피를 깔고 부인에게 이야기하고 홀로 방에 들어가,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나의 다짐이 가정의 평화보다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상상 조각나 버린 생각이다.
그렇게, 아이와 집에 돌아와, 아이와의 일상을 보내고, 아이와 아내가 침대로 들어가고 나서, 마저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씻고 나와서 컴퓨터를 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시간은 이미 4시 40분으로부터 퍽 많이 멀어져 있다. 멀어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의 바람은 오늘이 지나기 전 글을 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4시 40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독일에서 처음 살았던 집은 다가구 주택에 2층이었는데, 이 집은 교회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매일 새벽기도를 인도하셔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누나와 나도 매일 새벽 그 차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것보다, 교회에서 학교로 가는 게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새벽기도에 간다고 해서, 한참 잠이 많았던 청소년 시기에 제대로 말씀을 듣고 기도하지는 못했다. 노력을 했다만 열에 여덟은 하나님이 주시는 잠을 누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교회를 이전하고, 이전한 교회 옆 사택으로 이사 가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교회와 집의 거리는 10m 남짓이었고, 이전처럼 굳이 학교에 편하게 가기 위해 교회를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어쩌다 한번 새벽기도를 가곤 했던 것 같다.
사실 새벽기도를 제일 열심히 다녔던 건, 누가 뭐래도 군대에서였다. 군대 이전 신학교 시절에는 교회가 워낙 멀고, 교통이 좋지 않았기에 가기 어려웠고, 일어나 홀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곤 하였는데, 군대에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군종병으로 군대에 갔다.
이제는 새벽기도가 내 삶이 편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 신앙을 위해서도 아니고, 군인으로서 맡겨진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돼버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교회로 내려가 교회와 교회 앞마당 불을 켜고, 교회입구에 놓인 커피기계를 세팅해 두고, 성전에 불을 켜고, 온도를 조정하고, 마이크 시스템을 확인한다.
이런 군종병의 새벽기도가 일반 교역자보다도 더 중한 것이, 군종병의 새벽기도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에, 군종병이 새벽기도를 빠지고, 새벽기도가 드려지는 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이는 그냥 예배 준비에 실패한 것뿐만 아니라, 군인으로서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으로, 심각하게는 군사법에 따라 지시 불이행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군생활하면서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새벽기도에 늦은 적도, 놓친 적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강제적이긴 했지만, 내 새벽기도의 시간은 가장 뜨거웠던 때도 그때였다. 처음에는 고단했지만, 나중에는 그 고요한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이 새벽기도에 대한 불이 요새 다시금 타오르려고 한다. 본래는 당번제로 하던 새벽기도를, 이제는 당번이 아닌 교역자들도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함께 나와 기도하기로 교역자 모두가 결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새벽기도는 비교적 늦은 편이다. 5시 30분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 4시 40분에 일어나려고 한다. 내일 4시 40분에 일어났을 때는 부디 12시간 전 아찔했던 그런 순간이 없기를 바란다. 잊은 점 없이 차분히 준비하여 나가기를 바란다.
이처럼 글을 올리는 일도, 아이를 보살피는 일도, 새벽기도에 나가는 일도, 내 몸이 편하기 위해서 하는 일도, 세상에서의 의무를 당하는 일도, 교역자로써 감당해야 할 일도, 처음에는 강제이든 열정이든 강한 원동력을 따라 행하곤 한다.
이런 열심에 가장 큰 적은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일을 이루는데 혁혁한 공을 쌓았던 그 원동력이 공중에서 기화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 원동력이 온 데 간데 없어지면 열정의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이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메마른 껍데기는 가시가 되어 이 사람 저 사람을 쑤셔 되기 때문이다.
내 삶에 열정의 껍데기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가시가 되어 사람을 쑤시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금 불을 때야 할 때이다. 사랑이든, 열정이든, 강압이든 간에, 불을 때워 사람이 사람 되게 살아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