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의 행복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내가 사는 행신동에는 가을을 가득 채우는 명물이 있다. 바로 은행나무이다. 행신동의 행과 은행나무의 행이 같은 의미가 아닌데도 행신동이라 그런지 해마다 만추가 되면 은행나무의 노랑으로 행신동이 노랗게 물든다. 여기저기 은행나무 명소라는 곳도 있지만, 굳이 그런 곳을 찾아가지 않는 것은, 우리 동네의 은행나무로도 충분히 가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는 그 나무들이 은행나무인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저 겨울의 마른 나뭇가지들 이 봄이 찾아오면 연푸른 나무로 바뀌고, 여름이 짙어지면 질수록 나무들 역시 짙푸른 나무로 바뀌는 것을 목도할 뿐이다. 그런데 10월이 접어들면서 동 네 길을 걸으면서 ‘아, 이 나무가 은행나무지.’라고 자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은행들이 길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좀 피해서 걸으려고 해도 너무 많아서 이내 포기하고, 은행을 밟으며 걷는다. 그러다 보면 빠직빠직 소리를 내며 열매들이 부서지는 느낌은 밟아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렇게 은행이 떨어지고, 몇 번의 가을비로 날이 서늘해지면 비로소 은행잎들이 노랑으로 조금씩 물들어 간다. 이제 11월이 시작되면서 행신동은 바야흐로 은행의 계절로 가을을 꽉 채우고 있다. 어제저녁, 그렇게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길을 걷다가 문득 내 인생 최고의 단풍이 생각났다.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 나는 10월 중 순경 저 유명한 설악산 단풍을 보겠다고 설악산을 갔다. 주일날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오색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6시쯤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굳이 오색에서 등산을 시작한 이유는 오색에서 정상인 대청봉까지가 가장 최단 거리이기 때문이다.


단, 거리는 짧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을 올라가는 난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젊은 객기에 이정도쯤이야 하고 그 코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새벽에 길을 나서니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비에 산행을 그만둘 수 없어 일찍 문을 연 가게에서 천 원짜리 비옷과 김밥 한 줄을 사서 등산을 시작했다. 코스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한참 뛰어다닐 나이였는데도 오색 코스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에 조금씩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서 힘이 빠져 갔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두 시간쯤 오르니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고, 오히려 우박이 되어 쏟아졌다. 하지만 올라온 시간이 아까워 내려갈 수는 없고 내쳐 오르고 또 올랐다. 온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묵묵히 앞만 보고 대청봉을 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박이 아니라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기온은 더 내려가서 손은 시리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몸은 열이 날 대로 나서 머리에서 김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 5시간 만에 대청봉 산장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언제 왔는지 산장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와 우박, 눈, 그리고 땀으 로 범벅이 된 비옷을 벗어두고 먹는 김밥을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렇게 30 분쯤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내려갈 길이 급해 다시 길을 나서려고 비옷을 찾으니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이미 산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 나갔는데 내 비 옷은 사라졌고, 다 찢어진 누더기 같은 비닐 비옷만이 걸려 있었다. 산장에 비 옷이 있나 했더니 다 팔렸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누더기 비옷을 입고 하산하게 되었는데 원래 코스는 소청을 지나 양폭 산장으로 해서 천불동 계곡을 지나서 비선대를 거쳐 외설악인 설악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 겼다.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내려가다가 한순간, 잘못 길을 택한 바람에 등산 코스가 아닌 죽음의 계곡 길로 내려간 것이다. 제대로 된 길을 없고, 커다란 바위들로 가득한 길을 내려가려니 두 손과 두 발을 다 써서 기어가듯 내려가 야 했다.


설악산이 험하다고 말로만 들었는데 역시 악산이라는 생각에 온몸은 긴장으로 힘이 들어갔다. 거기에 기온이 급강하해서 바위를 잡을 때마다 손이 바위에 쩍쩍 붙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산장에서 목장갑이라고 샀으니 천만다행이라고 할까.


그렇게 죽음의 계곡을 목숨 걸고 내려온 후에야 비로소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날의 그 고단한 산행은 그것으로 끝나 지 않았다. 세상에 고진감래란 말이 왜 존재하는지,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비옷만큼이나 누더기가 된 몸을 겨우 지탱하며 천불동 계곡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내 평생에 가장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연을 목도하게 되었다.


내리던 눈은 밑으로 내려오니 다시 비로 바뀌었다. 그리고 먼저 내린 눈이 단풍잎에 걸쳐 있어 천불동은 빨갛고 노란 단풍이 흰 눈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거기에 운무가 자욱한 계곡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내 평생에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자연을 눈에, 가슴에 담았다. 등산만 생각해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 어찌나 아쉽던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감히 카메라로 어떻게 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으랴.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나는 천불동 계곡의 그 수많은 계단을 노래하며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설악산에 가기 전보다 대청봉에 다녀와서 더 많은 날을 보냈다.


그리고 세계 많은 곳을,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때의 감동을 주는 곳은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마음 한 곳에는 그날의 풍경이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사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아서 살아보니 내 생각대로만 인생이 살아지지 않았다. 힘들고 아프고, 속상한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어떤 고됨도 고됨만으로 끝나지 않음을. 그 어떤 실패도 실패로만 존재하지 않음을. 그렇게 아름다운 단풍도, 은행의 노랑들도 끝이 있음을. 그 찬란함을 사람들에게 보이기까지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의 인내가 있었음을.


결국 산다는 건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내 생각대로 안 된다고 열받을 필요도, 분을 낼 필요도 없다. 그 또한 다 지나갈 것이니 내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행복하게 노랑으로 물드는 은행잎에 눈길을 준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일 오전 06_29_49.png 천불동계곡을 바라보는 남성의 모습을 AI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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