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오붓하게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아이는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다. 생활 스타일, 시간의 분배, 사건의 중요도, 모두 아이에게 맞춰진다. 그렇게 아이는 부모의 인생을 먹고 자라난다.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은 바쁘다. 누군가는 아이를 온전히 맡아야 하고, 누군가는 일상을 꾸려 나가야 한다. 아이 밥을 먹이고, 부모가 밥을 먹는다. 아이의 몸을 씻기고, 부모가 몸을 씻는다. 아이 잠을 재우고, 부모가 잠을 잔다. 부모는 그렇게 매일 저녁 두 명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분명 가족은 세 명뿐인데, 바쁘기는 네 명 다섯 명 몫이다.


그래도 아이가 참 좋다. 아이가 잠들면 아이가 너무 예뻐 깨우고 싶다. 그렇다고 한 번도 아이를 깨워 본 적은 없다. 깨어난 아이에게 바라는 건 잠드는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를, 나와 누나를, 깨운 적이 있다. 물론 어린아이 시절은 아니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처음 스위스로 여행을 갔던 때이다. 한 참 잠이 들어 있었는데, 부모님이 나와 누나를 깨운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 생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이 났나? 누가 아픈가? 독일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왔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하늘에 수놓아진 별을 보기 위해 깨웠다는 것이다. 밤하늘을 보았는데, 별이 너무 아름다워서 함께 보고 싶어서 깨우셨던 거다. 스위스 그 산골에, 한적한 시골에 숙소를 잡았으니, 별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는 뭐 이런 걸로 잠이 깨우나 투정을 부렸더랬지만, 내심 그 아름다운 광경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멋진 밤하늘을 생각해 보노라면, 그때 그 하늘이 기억나곤 한다.


독일에서 부모님은 최대한 우리, 누나와 나와 함께 많은 곳을 가고자 하셨고,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자 하셨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 더 즐겨볼걸, 그때 조금 더 신나 있을걸, 그때 조금 더 즐거워할 걸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도 그때의 퉁명스러움이 덧없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밤하늘에 별과 같이 수놓아진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영원할 것 같던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도,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다시 부모님 두 분이 사신 지 십수 년이 되었다. 매일 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에서 십수 년은 영원같이 느껴질 만한 기간이다. 우리 가족에게도 상상하지 못한 여러 사건이 닥쳐왔었다. 아버지의 이동, 어머니의 투병, 할머니의 소천, 나의 결혼, 누나의 결혼, 또 출산과 간병의 시간.


넉넉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여러 사건이 찾아왔다. 그러니, 그 사건 속에서, 그 시간 속에서 두 분이 나눈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두 분이 나눈 감정은 얼마나 다채로웠겠는가? 두 분이 품어야 했던 마음은 얼마나 고되었겠는가? 그래도 40년 넘도록 함께 살아온 시간이 서로에게 힘이 되었으리라.


지난 월요일 잠시 부모님 댁에 들렀다. 한참만에 본 아들에게 좋은 일이 있어 두 분이 식사하시러 나가신다고 했다. 아버지의 단어 선택이 너무 유쾌했다. 오붓하게 식사하러 가셔야 한다는 말. 40년 넘도록 부부로 사시고, 다시금 두 분만 함께 살아간 시간이 십수 년이 되어가는데, 오붓하게, 라니. 한편으로는 우스웠고, 한 편으로는 마음 한가득 따뜻해지는 말이었다.


나와 내 아내는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제 겨우 7년 남짓 살아왔는데, 지금으로부터 30년, 40년 뒤에도, 둘이 오붓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이제 겨우 자기가 원하는 양말을 고르는 딸을 둔 부모로서는 사치와 같이 느껴지는 단어이다.


그래도, 30년 뒤, 40년 뒤에, 내 아이에게도 그런 말을 건네고 싶다. ‘둘이 오붓하게’. 언젠가는 우리 아이에게도 보여주었으면 하는 소중한 보석과 같은 마음이다.


부부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AI로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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